▽투신 과정=지난해 12월 27일 공식적으로 대우건설 사장직에서 물러난 남 전 사장은 상담역을 맡아 계속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1월 7일 검찰에 긴급 체포된 이후 회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씩 회사에 나타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이 대우건설 직원들의 설명.
남 전 사장은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본 뒤 부인 등 가족들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남 전 사장은 아들(26)의 휴대전화를 갖고 집을 나섰으며 부인 소유의 레간자 승용차를 이용했다.
한남대교 근처에 도착한 남 전 사장은 이날 정오경 대우건설 법무팀장 신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 의사를 전했고, 낮 12시 25분경 한남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공항방면 진입로에 차를 세워두고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들은 그의 투신 소식을 TV 뉴스 및 지인들의 전화를 통해 뒤늦게 안 것으로 전해졌다.
▽왜 투신했나=남 전 사장이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수모’를 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이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자 이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검찰의 대우건설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남 전 사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들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시인한 것도 그를 괴롭혔던 한 원인이라는 분석.
실제 이회창(李會昌) 전 대통령후보 법률고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 열린우리당 정대철(鄭大哲), 무소속 송영진(宋榮珍), 한나라당 박상규(朴尙奎) 의원, 노 대통령 측근 안희정(安熙正)씨 등이 대우건설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남 전 사장이 검찰 수사에 순순히 응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친형 건평(健平)씨에 대한 청탁 사실이 드러난 것에 심리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대우건설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우건설의 전직 임원은 “비자금 사건은 회사를 위한 일이어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인사 청탁 같은 개인적인 문제들이 공개되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실명을 거론하자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및 회사 표정=남 전 사장 가족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침묵에 빠졌다. 남 전 사장의 부인 김선옥씨(53)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대우건설 직원들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직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TV뉴스를 보며 사건의 추이를 지켜봤다. 대우건설 정재영 경영기획실장(52)은 “사장님은 워크아웃 상태였던 회사를 끈질긴 노력 끝에 살려낸 존경받는 경영자였다”며 “투신 소식을 들으니 너무 비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탄핵표결 앞두고…” 청와대 당혹
청와대는 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한강에 투신하자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 탄핵 표결을 앞두고 악재가 터졌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요구를 정면 거부, 야당 의원들을 자극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 남씨의 자살이 탄핵 표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제가 논평을 할 만한 사안이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남상국 前사장 관련 盧대통령 발언 요지▼
“이판에 제 형 노건평씨까지 끼어들어서 참 미안하기 짝이 없다. 대우건설은 워크아웃 기업인데 대우건설 사장의 유임을 청탁한다는 뜻으로 3000만원을 받았다.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돈은 이미 돌려주었다고 한다. 아울러서 1억원을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거절했다는 사실도 있다. 함께 모아서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어떻든 죄송하다.(…)
이번 남상국 사장이 청탁했다는 이유로 해서 제가 (청와대) 민정과 인사에 지시해서 직접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 지시하고 뒤에 확인까지 했다. 형님의 실수가 있더라도 제가 잘 관리할 터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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