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에게 “일부 친노(親盧)단체 회원들이 의장의 국회 본회의 진행을 막기 위해 12일 하루 동안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의 출입을 봉쇄하려 한다는 첩보가 있다”며 11일 밤을 의장실에서 보낼 것을 종용했다.
이날 정국 기류 변화의 분기점은 탄핵 추진에 소극적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 중 상당수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에 크게 실망해 ‘탄핵 찬성’으로 급선회한 것이었다. 이에 양당 지도부는 “탄핵 가결 정족수(181석)를 웃도는 의원 수를 확보했다”며 오후부터 표결 처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본회의장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의원 30여명이 철야 농성을 하며 박관용 국회의장의 본회의 개최를 물리력으로 저지했다 이에 박 의장은 “12일 오전 10시 회의를 다시 열겠다”고 퇴장해 일단 여야간의 결전은 하루 더 미뤄졌다.
▽탄핵에 기름 부은 노 대통령 기자회견=한나라당의 전재희(全在姬)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과 민주당의 추미애(秋美愛) 이낙연(李洛淵) 김성순(金聖順) 의원 등 탄핵 추진에 부정적이던 양당 소장파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회견 직후 탄핵 찬성쪽으로 돌아섰다. 김성순 의원은 “대통령이 유감 표명만 제대로 했어도, 나 혼자라도 ‘탄핵 표결하지 말자’고 주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민주당 유용태(劉容泰)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 자신이 탄핵 의결 정족수를 채워줬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중 찬성이 185명에 달하고, 일부 자민련 의원도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총무도 “이제 남은 것은 표결뿐”이라고 거들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광주지역 기자들과 만나 “탄핵에는 당초부터 반대했지만 오늘 회견은 국민이 납득하기에는 미흡했다”고 말했다. 자민련은 12일 의원총회를 열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한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며 탄핵 반대 입장을 고수했지만, 같은 당 정우택(鄭宇澤) 의원은 노 대통령의 회견 후 투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사회봉도 못 잡은 박관용 의장=한나라당 의원 124명은 이날 오후 4시10분에, 민주당 의원 49명은 4시 13분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한나라당 이원창(李元昌)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체통을 지켜야지”라고 야유를 보내자 열린우리당 천용택(千容宅) 의원은 “입 다물어”라고 되받는 등 고성이 오고갔다.
박 의장은 오후 4시25분경 국회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회의장 정문을 통해 입장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까지 점거하는 바람에, 박 의장은 이날 낮 전직 국무총리들과 오찬 회동을 한 뒤 2시간 반 동안 국회 주변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장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저지로 의장석으로 올라가지 못하자, 의원 발언대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부된 안건은 처리해야 할 역할과 의무가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끝내 저지선을 풀지 않았고, 회의는 시작도 못한 채 산회했다.
▽노 대통령, 탄핵 각오했나=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탄핵이 나온다 할지라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나오는 날까지 국정의 중심을 잡아나가자. 담담하게 감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경우의 대통령 직무정지 상황까지 각오한 듯한 분위기였다.
노 대통령은 또 “표결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표결이 나오면 법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못하고 국가 중대사도 결정 안하는 게 옳을 것이다”며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가져 달라. 어려운 때일수록 좋은 친구가 생기는 법이다”는 말도 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태도에는 탄핵안이 의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수용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여권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10일 노 대통령을 만난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노 대통령이 너무 자신감에 넘쳐 있다. 탄핵소추안이 설령 의결이 되더라도 헌재 심판 과정에서 기각도 아닌 ‘각하’감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는 “헌재가 노 대통령의 힘이 다 빠졌다고 보고, 정치적 판단을 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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