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탈북 작가’

  • 입력 2004년 3월 11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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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을 때 우라늄 정련공장에서 일했던 김대호씨(45)는 1994년 4월 한국에 왔다. 그는 서울에 온 지 닷새 만에 월간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근무한 남천화학연합기업소는 연간 20만t의 우라늄 광석을 처리해 120t의 우라늄을 생산한다”고 폭로했다. 정련된 우라늄 120t이면 핵폭탄을 얼추 20개나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김씨와 함께 귀순한 여만철씨 가족에만 관심을 쏟았을 뿐 그의 주장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하면서 핵 위기는 한결 누그러진 듯 보였다. 사람들은 한미일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경제지원을 하면 북한도 결국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낙관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다가 재작년 10월 북한이 돌발적으로 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하면서 2차 핵 위기가 터졌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은 최근 이에 대해 “한국인들이 북한의 핵 위협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김씨도 북한 실상에 대한 남쪽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가 핵개발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1997년에 나온 첫 작품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은 경찰 등 관계기관의 심한 견제를 받아야 했다. 김씨는 그때 ‘북한 핵 관련 사실을 더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은 김씨가 최근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꽃이 피지 않는다’는 두 번째 책을 냈다. 이번에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탈북자들은 대부분 북한 정권에 대해 강한 반감과 불신감을 갖고 있다. 북한에서 고생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려면 북한체제가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탈북자들도 많다. 정부가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남북 화해에는 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이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 사이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착각과 오해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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