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공백 최소화에 힘 모아야한다

  • 입력 2004년 3월 12일 17시 40분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겸허히 수용하고 정부와 야당은 혹 있을지도 모를 국정 공백과 혼란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이제는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측면을 간과하기 어렵다. 좀 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극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던 날 아침의 한발 늦은 사과를 보면서 국정 전체를 보는 넓은 눈과 책임감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앞세웠던 대통령의 편협한 리더십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탄핵안 심리를 서둘러 가부간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은 있되 직무는 정지된 비정상적 상황이 오래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헌재의 결정 시점에 따라 대통령의 운명은 물론 총선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도 신속히 판정해야 한다.

고건 국무총리의 어깨도 실로 무거워졌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나 국정의 과도 책임자로서 국방 외교 경제를 포함한 모든 현안에 한 치의 차질도 없이 대처해야 한다. 워낙 미증유의 사태라 권한이양에 관한 구체적인 선례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행정가로서의 고 총리의 경륜을 믿고 싶다. 고 총리가 즉각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불러 대외신인도부터 챙길 것을 당부한 것은 바른 대응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다.

야당도 협조해야 한다. 탄핵안 가결이 문제의 끝은 아니다. 야당의 주장대로 탄핵이 진정한 ‘의회민주주의의 승리’가 되려면 혼란 없이 보다 나은 상태의 정치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나라당부터 초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도 여당도 없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탄핵안 통과 후(後) 정국’이다. 총선 관리를 비롯한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정부와 함께 책임지는 진정한 파트너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열린우리당도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의원직 총사퇴와 같은 강경 대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총선을 앞두고 탄핵을 지지세력 결집의 촉매제로 삼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노 대통령 자신이 “총선을 재신임과 연계하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지 않았는가. 청와대측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고 했으면 이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여야 모두 말을 아끼고 처신을 신중히 해야 한다. 대통령의 적의(敵意)가 야당의 적의를 낳고, 야당의 적의가 다시 대통령의 적의를 부채질한 결과가 탄핵안 가결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극도의 양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탄핵안 가결이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되는가 하면 “법의 가면을 쓴 쿠데타”로 매도되고 있다.

정치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분열은 막을 길이 없다. 탄핵안 가결을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하나의 전기(轉機)로 삼아야 한다.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면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과 처방을 헤아려 보는 것이 그 첫걸음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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