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과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의 파국적 충돌은 ‘양쪽 선로에서 달려오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예상된 일이었다. 또 총선이 다가오면서 거세진 야당의 무차별적인 정치적 공세도 양측의 갈등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입법부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불신임하는 최악의 사태에 이른 데에는 무엇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12일 오전 국회 표결 직전 노 대통령은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통해 뒤늦게 대국민 사과와 선거중립 의무 준수의 뜻을 밝혔지만 ‘뒷북치기’로 끝났다.
이날 노 대통령이 밝힌 내용도 이미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과 청와대 참모진이 여러 차례 건의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11일 기자회견에서는 도리어 “잘못이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사과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야당을 한껏 자극했다.
노 대통령은 12일 오전 야당과의 대화 의사도 밝혔지만 그에 앞서 10일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제안한 4당 대표와의 회동은 거절했다.
그런 탓에 대통령 탄핵에 부정적이었던 야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하루만 더 빨리 그런 얘기를 했으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라는 탄식이 나왔다.
이 같은 ‘오기(傲氣)정치’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고 결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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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일 야당이 국회에서 김두관(金斗官) 전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키자 이를 맹비난하며 사표 수리를 거부하다가 보름 후에야 김 전 장관의 사표를 처리했다. 당시 야당은 노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즉각 받아들이지 않자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거부하겠다고 대응했고 이에 노 대통령은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야말로 국정이 시끄럽게 될 때 (해임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노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을 사퇴시켰지만 이에 자극받은 야당이 9월 23일 윤성식(尹聖植)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부결시키는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말 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청주 술자리 향응 파문이 불거지면서 양 전 실장이 사표를 제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은 며칠 후인 8월 2일 제2차 국정토론회에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으면 후속 보도가 나오고 그걸로 청와대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후속 기사가 두려워서 아랫사람의 목을 자르고 싶지 않다”며 한동안 언론에 잘못을 돌리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새로운 의혹이 더 제기되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고 노 대통령은 사흘 뒤인 8월 5일 양 전 실장의 사표를 처리했다.
지난해 4월 국회 정보위원회가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 임명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냈을 때도 노 대통령은 “국회가 검증만 하면 되지 임명하라 마라 하는 것은 월권이다. 어느 시대인데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나와서 색깔을 씌우고…”라고 야당을 맹비난해 야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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