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의 학급 반장 선거가 있던 날, 아이가 귀가하자마자 ‘혹 우리 아이가 반장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서둘러 물어봤다. “너희 반 반장은 누가 됐니? 부반장은?” 엄마의 조급증과는 거리가 멀게 아이는 심드렁하게 반장은 누구, 부반장은 누구라고 대답한다. “너도 손들고 반장에 나섰니? 몇 표나 나왔는데…?” 그러자 아이는 또다시 귀찮다는 듯 대답한다. “아뇨. 난 반장 한다고 손 안 들었어요.”
서운한 마음에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선생님이 선거 때 했던 말들은 꼭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어요.”
아하! 아이는 반장이 된 뒤에 떠맡게 될 책임감에 먼저 마음이 무거워져 손을 안 들었는가보다. 조금은 고지식한 아들의 말이 당혹스러웠고,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해주지도 물어보지도 못했다.
총선에 탄핵문제까지 겹쳐 정치권에선 거친 공방이 오가고 있다. 말이란 본시 ‘의사 표현의 도구’인데, 요즘은 ‘자기변명과 치장의 도구’로만 쓰이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TV 뉴스나, 신문 주요지면에는 매일 각 정당의 대변인이 상대에게 퍼붓는 ‘독소’ 같은 말이 난무한다. 정치 사회면은 아이들에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구역이 된 지 오래다.
아이를 칭찬해주지 못한 것은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면서 살아가라”고 하기엔 왠지 아이가 성인이 된 다음 손해를 보게 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때 ‘융통성’이란 말의 뜻을 가르쳐주지 못한 엄마를 탓하게 되지나 않을지, 여러 모로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홍은숙 주부·경기 의왕시 내손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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