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민주당에 보낸 회신에서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 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위반 행위’라고 명시했다. 이와 달리 노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에는 법 위반 사실을 명기하지 않고 ‘선거중립 의무를 지켜 달라’고 권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명백한 ‘이중 플레이’가 아닌가.
선관위는 언론 브리핑에서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경고 대신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법 집행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발상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약해져서야 관권선거를 감시하고 시정하는 직무를 과연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선관위는 대통령의 하부조직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선거법의 엄격한 해석과 적용을 위해서이다.
선관위는 1989년 재선거에서 야당의 경우 총재에게 경고장을 보내고 여당은 대표에게 보내던 관행을 깨고 당시 민정당 총재이던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경고장을 보냈다. 재선거가 끝난 뒤 이회창 위원장은 선거가 혼탁하게 치러진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사퇴했다. 선관위는 과거 어렵게 내디딘 발걸음마저 뒤로 돌려놓은 셈이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에 대한 해석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에서 최대 쟁점 사항이다. 나라에 엄청난 사태를 불러온 단초를 만들고서도 지금 선관위에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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