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흘렀어도 정치는 제자리 ▼
국회 가결에 대한 청와대의 첫 반응은 이 사태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련’이라는 것이었는데 어떤 의미로든 이 사태가 ‘시련’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련은 정치의 바깥이 아니라 그것의 좁은 안에서, 정치인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대단한 잘못도 아닌 것으로 수적 우세에 기댄 야당의 무리수가 빚은 것이었고(오죽하면 야당 대표가 ‘기쁘지 않은 승리’라고 했을까) 여야 정치인들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국회의장은 ‘자업자득’이라 했다) 대다수 여론의 예상과 판단을 뒤엎는 결과였다. TV토론의 여야 의원들은 큰 책임을 서로 상대편에 씌우고 있었는데, 그러나 아마도 대통령 자신이 가장 큰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당의 지도자는 거대 야당의 폭력이 우리 민주주의를 3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분노했다. 실제 TV화면으로 보는 의사당은 유신 시절의 그 추악했던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정치인들이 우리 의회정치의 역사에서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았다기보다는 세월이 흐름에도 정치 현실의 시곗바늘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정직한 판단일 것이다. 한 세대 전의 우리 국회는 거대 여당의 폭력적, 일방적 강행과 그것에 맞서는 소수 야당의 맨손 저항으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대 야당의 일방통행과 소수 여당의 맨손 저항이었다. 역할만 교체된 것이다.
아니, 다른 것도 하나 있다. 대통령은 소수당 편이었고 독재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다는(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탈권위주의의 민주적 성품인 것 같고 어쩌면 도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인물일 것이다. ‘이상주의적’이란 것은 그가 우리의 정치 지형도를 지역주의로부터 보수-진보의 이념적 구도로 개편하면서 개혁성을 주도적인 힘으로 바꾸려고 한 때문에서이고, ‘도덕적’이란 그 변화를 정치의 실제를 요리하는 데서가 아니라 제도 개혁과 엄격한 법적용을 강행한 때문에서다. 그 방향과 방법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치는 제도와 법을 아우르는 더 큰, 타협과 조화의 자장(磁場)이며, 보수의 벽은 그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두꺼웠다. 기존의 정치권은 위기감을 느꼈고 명분과 달리 현실에서는 이 변화에 동조할 수 없었다.
▼‘相生의 리더십’ 왜 버렸나 ▼
노 대통령은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현실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자신의 도덕적 의지를 과신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과 변화에 대한 반대자들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간주함으로써 상생의 카운터파트로 포용할 리더십을 버렸다. 그는 정치 현실에 순진했거나 편향적이었고, 그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이지만 기득권에게는 불만이었다. 이 사태는 이상과 도덕성의 차원과는 또 다른 현장 정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 정치발전을 위한 시련이며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피할 수 있는 시련을 스스로 만들어 겪고 있다는 것, 조용히 습득할 수 있는 교훈에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만의 정치’에 우리 국민이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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