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너는 어찌하여 승은을 입지 못한 거니?’
총선을 앞두고 명망가 여성이 정계에 의해 ‘픽업’되는 현상을 비꼬는 우스갯소리다.
젊다, 여성이다, 그리고 전문 분야에서 유명하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여성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농담이건 진담이건 주변의 출마 권유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이 18일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 성북을에 출마한다. 불과 이틀 전 전여옥 전 KBS 도쿄특파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대변인을 맡아 MBC 앵커 출신인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과 각을 세웠다. 17대 국회가 여성정치시대를 활짝 열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유명세 있는 여성이 정치에만 ‘올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명망가 여성 중심의 공천
한나라당 김희정 부대변인(부산 연제)이 현역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받은 것은 당의 사이버기획부장이라는 참신성과 젊다는 프리미엄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혜훈 연세대 연구교수(서울 서초갑)도 같은 이유로 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최대 야심작’으로 꼽히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간판스타인 추미애 의원(서울 광진을)은 물론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경기 남양주갑)과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박금자 의원(서울 영등포을)이 출마한다.
열린우리당에는 현역 여성의원과 전직 장관 외에 건축가 김진애씨(서울 용산), 최초의 여성장군인 양승숙 전 국군간호사관학교장(충남 논산-계룡-금산)이 있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세를 갖고 있다.
양 전 교장은 “장군이 된 이후에는 연예인처럼 생활했다”고 주변의 관심을 토로했었다.
특히 비례대표에서는 명망가 중심의 공천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나라당에서는 이계경 전 여성신문 사장과 나경원 변호사, 열린우리당에서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과 이경숙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민주당에서는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이 눈에 띈다.
김원홍 한국여성개발원 법정치연구부장은 “‘이미지 정치 시대’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명망가 여성이 많이 영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김 부장은 “다만 여성에게는 전문 분야에 남아 더 큰 전문가가 될 것인가, 정치인으로 변신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고 덧붙였다.
●명망가 여성의 허실
전여옥 대변인이 남성적이라는 평에 대해 “내 안에 남성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사려 깊은 부분도 많다”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너무 여성적’이라고 말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추미애 의원은 비슷한 평에 대해 “여성성은 남편에게만 확인받으면 된다”고 답한 적이 있다. 더 나아가 추 의원은 “여성이기 때문에 특혜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말에서 드러나듯 모든 여성이 여성주의자는 아니다.
여성학자 권인숙씨는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여성문제 해결이나 여권신장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지만 여성도 남성 못지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예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여성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선택된 명망가 여성만으로는 정치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각 전문 분야에서 역할모델을 해야 할 여성전문가를 모두 정치판으로 끌어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끝난다면 여성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여성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
정계 입문설이 나돌았으나 최근 통신업계 최초의 20대 임원이 된 윤송이씨는 “공천 1번이라는 이야기는 신문을 보고 알았지만 그건 내 자리가 아니다”며 “내 모습이 후배들에게 도전의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여성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백영옥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여성들이 각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성을 정책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여성들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능력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긴급수혈’을 한다는 의미에서 명망가를 중심으로라도 여성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 충원방식도 다양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맞벌이 주부인 한태숙씨(46·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여성들이 정책 입안에 힘쓸 수 있는 지위에 많이 올라야 한다”며 “여성들이 비록 출마했다가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갖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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