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은 김대중 노무현 전·현직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현역의원이 맞대결을 벌이게 돼 양당이 접전을 벌일 호남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거구다.
5선의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이자 대통령 정치특보인 김원기(金元基·67) 의원과 재선의 동교동계 비서 출신 민주당 전국구 윤철상(尹鐵相·54) 의원의 대결은 양당이 서로 우세를 주장하는 가운데 막판까지 치열한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정읍은 전통적으로 야성(野性)이 강하고 광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최근 20여년간 실시된 선거에서 DJ와 그의 당에 대한 지지도가 전북 어느 지역보다 높았다.
김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불릴 만큼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열린우리당 창당공신이다. 윤 의원은 1980년대 후반부터 DJ의 비서실 차장을 지내는 등 ‘영원한 DJ맨’을 자처하는 가신 출신.
두 사람의 대결은 이번이 두 번째로 8년 만에 펼쳐지는 ‘숙명의 한판’이다. 1998년 15대 총선에서 윤 의원은 DJ가 창당한 국민회의 후보로, 김 의원은 국민회의 창당에 반발한 ‘꼬마 민주당’ 후보로 맞대결을 벌였다. 윤 의원은 총 3만9329표(득표율 52.6%)를 획득해 당선됐고 김 의원은 2만891표(28.0%)에 그쳤다. 당시 김 의원은 첫 출마한 윤 의원을 ‘동교동에서 심부름하던 친구’라며 정치권 중진인 자신과 비교하는 것조차 꺼렸지만 ‘DJ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두 사람은 새천년민주당이라는 한 배를 타게 되면서 김 의원은 지역구로, 윤 의원은 전국구로 여의도에 동반 입성했다. 그러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두 사람은 15대 때와는 반대로 각각 ‘잔류’와 ‘신당행’을 선택해 정읍에서 재대결한다.
김 고문은 여당의 창업공신이고 참여정부 실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대통령과 잘 통하는 여당의 중진을 뽑아야 한다”는 주민들의 지역개발 기대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이 민주당과 DJ에 대한 배신이라는 논리를 전파하며 ‘성실한 조직관리’ ‘지역사업 챙기기’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론조사상 정당 지지도나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은 김 의원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유성엽 정읍시장이 지난해 10월 이미 신당행을 선택해 김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고 일선 하부 조직 관리자인 시의원 19명의 분포도 열린우리당 10명, 민주당 7명, 민노당 1명, 무소속 1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탄핵 정국을 보는 시각, 지역발전에 대한 공헌, 인물론과 세대교체론 등이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윤 의원측은 “15대 선거에서 맞대결해 월등히 앞섰고 성실한 지역구 관리와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뛴 점이 유권자들로부터 평가받을 것”이라며 “침묵하는 다수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노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해 열린우리당은 15대 당시 ‘꼬마민주당’과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 의원측은 “힘 있는 여권 중진이 당선돼야 예산을 많이 딸 수 있다. 지역이 발전하고 개혁과 정국안정을 위해서는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먹히고 있다”며 “올 들어 김 의원의 우세로 돌아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측은 또 “DJ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현 상황에서 윤 의원이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있겠냐”면서 “선거가 막판으로 흐르면 야성과 개혁성향이 강한 정읍의 유권자들이 김 의원쪽으로 쏠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은 고교 교사를 지낸 김용관(62)씨를 후보로 공천했다. 김씨는 ‘가을의 휘파람’ ‘녹두장군’ 등의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 지역민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편이다.
김광오동아일보 사회2부 차장급기자 kokim@donga.com
<신동아 2004.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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