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대통령직속의 국정과제위원회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에 참석한 한 핵심관계자는 "대통령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위원회가 대통령 없이 무슨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동안 수시로 대통령과 회의를 하고 지시를 받고 있었는데 대통령 부재 상태니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안으로 고건(高建)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보고하고 일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되기는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개혁과제를 총리가 대신 결재하기엔 버거울 것"이라거나 "사인만 받으면 바로 추진해야 할 중대현안들이 한 두 개가 아닌데 대통령을 제쳐놓고 고 총리가 예민한 사안을 결재하려 하겠느냐"는 지적이 나와 '없던 일'로 됐다. 대통령 국정과제위원회는 결국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때 까지 대통령처럼 '학습에 전념'하기로 결론을 지었다.
청와대 안에선 각 수석비서관실 차원에서 돌아가면서 '비상대기조'를 운용하고 있다. '일이 있든 없든'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 행정관은 "대통령이 관저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매일 뒷산에만 오르며 칩거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밤이라도 지새며 근신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외부와의 밥 약속과 술자리는 아예 피한다.
한 비서관은 "대통령이 저런 상황 인데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참모들이 모두 죄인된 심정으로 납작 엎드려 있기로 했다"고 내부 기류를 전했다. 일각에선 "고총리가 너무 잘하는 것도 대통령에게 부담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와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비서진들은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의 '말조심' 지시로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끊은 상태. 기자들과의 식사약속도 대부분 취소하거나 뒤로 미룬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에는 유일한 대언론 창구인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이 하루에 한번씩 들르지만 '대통령은 어떠시냐', '잠은 잘 주무시느냐'는 등의 기자들 질문엔 "특별한 게 없다"며 함구하고 꽁무니를 빼기에 바쁘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태가 이어지자 일부 직원들은 '표정 관리'하는 낌새도 엿보이고 있다.
한 핵심관계자는 "야당에서 말도 되지 않은 이유로 대통령을 밀어내려고 하다가 역풍을 자초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복귀하게 되면 탄핵소추 중 직무 정지된 기간까지 늘려 대통령직을 더 수행할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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