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선거법 틈새 불법…“선거 도울테니 돈달라” 브로커 활개

  • 입력 2004년 3월 21일 18시 48분


‘돈은 묶고, 입과 손발을 푸는’ 개정 선거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조직을 동원한 음성적 금품 향응 제공과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후보비방 흑색선전은 되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돈 선거’ 차단을 위한 신고자 포상제의 위력에도 법의 틈새를 이용한 신종 불법선거 운동이 빈발하고 있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0일 출마예상자측에 선거운동원을 확보하고 있다며 접근해 선거운동을 제의하고 1인당 하루 13만원(운동원 10만원, 브로커 3만원)씩을 요구한 선거브로커 김모씨(42·서울 강동구)가 선관위 직원에게 적발돼 검찰에 고발됐다. 김씨는 11일 모 정당의 서울 한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가 “다단계 판매원 200명을 확보하고 있다”며 선거운동에 활용할 것을 제의했다. 18일에는 지구당 관계자를 다시 만나 1인당 1일 13만원씩 지급할 것과 함께 착수금조로 200만∼300만원을 요구해 20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이를 건네받다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지구당은 법적으로 폐지됐지만 불법 사조직과 브로커를 가동하는 ‘기지’로서 오히려 음성적 역할이 강화된 셈이다.

서울 강북지역에 출마하는 모 정당 후보 Y씨는 21일 “선거법 개정 지연에다가 탄핵정국 와중에서 뒤늦게 선거에 뛰어든 일부 후보들이 공조직 가동이 불가능해진 틈을 타 불법 사조직과 자원봉사자를 가장한 유급 선거운동원들의 활동에 의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금품제공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지면서 유권자를 가장해 상대후보측에 향응을 요구한 뒤 이를 신고하려는 ‘프락치’를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후보들이 자신을 알리는 ‘포지티브 선거운동’보다는 상대후보의 불법을 유도해 옭아매려는 ‘공작’에만 열을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역시 서울 지역에 출마한 모 정당 후보 A씨는 “얼마 전 유권자 몇 명이 우리 운동원에게 접근해 ‘인사도 없이 무슨 표를 얻겠다는 것이냐’며 식사대접을 요구해 뒷조사를 해보니 상대 후보 운동원이었다”고 말했다.

12일부터 전자우편 발송 등 온라인 선거운동 기회가 대폭 확대되면서 ‘사이버 전투’를 위한 신종 금품거래와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비방도 극심해지고 있다.

경기 지역에 출마하는 모 정당 후보 M씨는 “5000만원만 주면 브로커로부터 유권자 주소와 e메일 주소를 넘겨받을 수 있다. 모 선거기획사에서 e메일 1개당 100원씩 주면 e메일을 발송해 주겠다고 제의해 왔다”고 털어놓았다.

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유권자들에게 e메일 공세를 퍼붓는 후보도 있어 ‘선거 스팸메일’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전화도 선관위에 잇따르고 있다. 다음달 2일까지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발송을 통한 선거운동은 금지돼 있지만 후보들은 벌써 상대편 운동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각종 선거운동 문자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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