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많은 덕담과 정겨운 말이 오고간 뒤 무슨 ‘결의문’을 낭독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연단엔 캠코더가 웅성거렸고 사회자는 일동 기립을 요구하면서 선창자의 구령에 따라 다같이 오른팔을 들어 결의 항목을 큰소리로 외쳐 달라는 것이었다.
▼출판기념회장 난데없는 구호 합창 ▼
거의 ‘날벼락’ 같은 주문이었다. 미리 받아 보지도 않은 ‘결의문’을 즉석에서 듣고 양해하고 찬동의 ‘슈프레히콜’(구호의 합창)을 해 달라는 것은 무리다 싶었다. 결의문 내용이야 물론 좋은 얘기요, 대부분 옳은 얘기였다. 그래도 그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엔 거리가 있고 미심쩍은 데도 없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설혹 그 결의문에 내가 100% 찬동한다 하더라도 꼭 오른팔로 주먹질하며 소리를 쳐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못 한다. 못난 성품 탓에 다시 태어나기 전엔 할 수가 없다.
식장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슈프레히콜 속에 모두가 오른팔을 들어 주먹질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혼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옆 자리에 동석한 팔순의 전직 대학 총장님을 훔쳐봤더니 그분도 난처한 듯 오른팔을 올리시다가 주먹질 않고 서 있는 나를 보자 슬그머니 팔을 내리셨다. 그러나 그것도 좀 어색하다 느끼셨는지 다섯 번인가 반복되는 슈프레히콜 가운데서 세 번쯤 주먹질을 하고 두 번쯤은 그냥 서 계셨다. 그러고 보니 모처럼 캠코더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 때문에 ‘그림’을 망친 꼴이 되었다. 연단에서 구호를 선창하는 분이 내 얼굴을 할퀼 듯이 노려보곤 했다. 만일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나처럼 굴었다면 처형당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노조원들,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대학생들이 주먹질하며 구호를 합창하는 것은 좋다. 나도 더러는 박수치며 성원해 주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이 연좌하고 주먹질로 슈프레히콜을 한다? 국회의원이 젊은 근로자나 대학생처럼 집단적으로 같은 짓을 한다? 심지어 대학 교수까지 떼를 지어 그 작태에 동조한다? 그게 무어 좋은 짓이라고….
독일을 여행한 프랑스 언론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독일 사람은 합창을 하면 자기 인격이 격상된 것처럼 느끼는 모양인데 프랑스 사람은 그 경우 되레 제 인격이 격하되는 것으로 느낀다던가. 우리는 어느 편일까. 이따금 국민의례로 애국가를 합창하는 걸 보면 한국 사람은 프랑스 사람을 닮았나 싶을 때가 많다. 전국이 열광했던 ‘2002월드컵’ 때도 한국팀이 출전한 게임을 포함해서 축구경기를 단 한 차례도 TV 중계조차 보지 않고, 그러한 ‘민족 반역’행위를 신문에 고백까지 한 유명한 영화감독이 있었다. 대한민국 좋은 나라라고 다시 한번 나는 실감했다.
좌우 어느 이념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어느 정당의 주장에도 나부껴 본 일이 없어 어떤 경우에도 하늘에 주먹질하는 슈프레히콜엔 동참할 수 없는 위인. 어느 한쪽에도 편들지 못하는 그런 어중간(於中間)의 위인도 그런대로 숙청당하거나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나라, 나는 그러한 대한민국이 좋고 고맙기만 하다. 다만 월드컵 이후, 특히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론 우리들이 독일 사람을 닮아가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탄핵 정국이 몰고 온 친노(親盧) 반노(反盧)의 편 가르기 대결은 그런 우려를 더해 주고 있다. 나는 어느 편이란 말인가.
▼이편도 저편도 아닌 ‘대한민국 편’ ▼
이편도 저편도 못 되는 어중간의 나는 오직 내가 좋아하고 고맙게 여기는 ‘대한민국 편’이다. 그래서 4월 총선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 대한민국에 사는 자유와 안전을 지켜 주려는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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