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당사 버려진 3층 건물 개고

  • 입력 2004년 3월 25일 01시 23분


“이거 쥐 나오지 않겠나?”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은 6일 밤 손전등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6가 청과물시장 내 옛 농협공판장 건물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노숙자들이 곳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 정도면 됐다”며 즉석에서 당사 이전을 결정했다.

전날인 5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인 안희정(安熙正)씨가 롯데로부터 받은 불법자금 2억원이 당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에 입주한 당사 보증금으로 유입된 사실이 검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정 의장은 이 사실을 보고받자마자 당사 이전을 결심했다.

탄핵안 가결 다음 날인 13일 입주한 1500여평 규모의 3층짜리 열린우리당 ‘공판장 당사’는 이렇게 마련됐다. 열린우리당은 공판장 소유주측과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200만원 지급을 조건으로 구두계약을 했고 추후 본 계약을 체결한 뒤 돈을 지급하기로 했다. 1층에는 대회의실과 민원실 및 민생경제특별본부가 있고 2층에는 의장실과 총선기획단이, 3층에는 대변인실과 기자실, 홍보위원장실 등이 있다.

현재는 영등포구청의 권고에 따라 당사 주변 조경 공사를 마치는 등 ‘실질적 여당’으로서 최소한의 외양은 갖추고 있지만 입주 전까지만 해도 5t 트럭 80여대분의 쓰레기가 공판장에서 나왔다는 게 당사 이전을 주도한 남궁석(南宮晳) 총무위원장의 설명이다. 입주 이틀 전에는 쥐와 각종 세균을 박멸하기 위한 약품소독도 했다.

여의도 당사 시절 의장실은 모 언론사 사주가 사용하던 방이라 별도 화장실에 한식풍의 창틀도 있었지만 현 의장실은 30여 평 규모에 별 장식 없이 회의용 탁자와 의자만 있다.

당사 겉의 절반 이상을 ‘민주주의와 민생경제 지켜내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덮어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건물 외벽은 손톱으로 긁어도 가루가 떨어지는 빛바랜 자주색 벽돌이다. 쪼그려 용변을 봐야 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골칫거리였지만 최근 1층에 별도의 화장실을 만들어 24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페인트 냄새 때문에 일부 당직자들이 피부질환 등 ‘새집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 냄새를 없애기 위해 깐 양파와 숯덩이를 실내에 놓아뒀을 정도다.

반면 여의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는 장점으로 꼽힌다. 여의도 당사에서는 입주 건물 지하식당의 설렁탕이 한 그릇에 6000원이었으나 요즘 당직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당사 앞 식당의 백반은 1인분에 4000원. 김현미(金賢美) 총선상황실장은 “공천 작업으로 저녁식사에 밤참까지 먹어도 이전 절반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공판장이 옮겨가는 바람에 손님이 끊겼던 인근 식당가에는 ‘축, 열린우리당 입주 환영’ 등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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