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재심(再審)을 가로막는 겁니까.”
J씨는 모 후보가 다수의 전과경력으로 자격에 문제가 있음에도 경선자격을 얻어 당선되고, 중앙당이 이의신청마저 묵살하자 그 배경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앙당의 실력자가 총선 후 당권경쟁을 의식해 그 후보를 지원했다는 심증을 굳히자 이날 소동을 벌인 것이다.
이처럼 정당민주화의 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상향식 공천제도는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본보와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소장 박찬욱 교수)가 공동 집계한 바에 따르면 23일 현재 각 당에서 4·15총선 후보 공천을 위해 경선을 실시했거나 실시예정인 지역은 열린우리당이 229개 공천 지역 중 86곳(37.6%), 민주당 217개 지역 중 73곳(33.6%), 한나라당이 228개 지역 중 15곳(6.6%)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 당이 경선의 원칙을 당헌 당규에 포함시켰음에도 경선이 아직 주요 공천방식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특정 후보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경선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의 전남 지역에선 모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형 경선을 주장하다 기존 지구당위원장의 입김으로 당원경선 방식이 채택되자 “특정후보를 위한 체육관 경선”이라고 비난하며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또 모 정당의 광주지역 여론조사형 경선에서는 특정 후보측이 지지자들을 동원해 여론조사기관에 전화를 걸도록 했다는 이유로 경쟁후보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중앙당 스스로 정치적 편의에 의해 상향식 공천을 무너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실제 열린우리당의 경우 중앙당이 후보를 결정하는 ‘전략공천’을 전체 지역구수의 30% 범위 내에서 가능토록 한 당헌당규 때문에 중앙당과 해당지역 다른 후보들 간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경선이 정치신인의 정계진입 문호를 확대하는 게 아니라 현역의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정당 중 경선 비중이 가장 높았던 열린우리당의 경우 현역의원 47명 중 13명이 공천 탈락해 3당 중 현역 탈락률이 가장 낮은 28%에 그쳤고, 민주당도 현역의원 61명 중 20명(33%)이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됐을 뿐이다.
반면 경선 비중이 가장 적은 한나라당은 오히려 현역의원 148명 중 59명(40%)이 공천대열에서 탈락해 3당 중 물갈이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경선에 해당하는 예비선거 방식이 본격 도입된 이후 현역의원들의 재선율이 높아졌다. 이른바 ‘현직효과(incumbency effect)’다. 그럼에도 예비선거제 폐지론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 과정의 민주성 공정성 때문이다.
결국 상향식 공천제가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지구당위원장이나 중앙당의 입김으로부터 독립된 공정한 민의 반영자로서 후보 선출권을 행사할 책임 있는 ‘진성당원’ 구조의 확립이 시급함을 17대 총선 경선 현장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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