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체제…’ 남북관계 ‘東北亞’ 틀속에서 풀어야

  • 입력 2004년 3월 26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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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동북아, 한반도/이수훈 지음/277쪽 1만5000원 아르케

한국에서 ‘세계체제론’에 대해 언급할 때면 이수훈 교수(경남대·사회학)를 전문가로 꼽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학문적 입신 이후 줄기차게 세계체제론자를 자처해 왔다.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세계체제론자로서의 그의 입지를 다시 한번 유감없이 확인시켜 준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서구중심적 세계체제론의 외연(外延)이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시아로 크게 확장됐다는 사실이다.

세계체제론의 지리적 지평 확대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저자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교수가 이 책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의 도덕적 성격을 높이 평가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한국은 반(半) 주변부적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전통과 근대, 동아(東亞)와 서구간의 이른바 ‘혼성가치’를 형성해 왔는데, 오늘날 이를 세련화하고 고도화하는 노력의 주역이 바로 시민단체라는 주장이다.

저자 자신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이런 역사적 소명의 중요성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 책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바로 ‘동북아’ 개념이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시대’ 담론에 동의하고 참여한다. 특히 그가 ‘동아시아’ 관념을 버리는 이유가 흥미로운데 거기에는 북한을 배제하는 미국 중심적 지리문화의 편향성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볼 때 ‘아시아·태평양’ 또한 비즈니스 중심의 협소한 개념일 뿐이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는 새로운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포괄적 범주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한국이 동북아 시대를 주창하고 표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경제적 이익 및 안보적 이해의 관점, 중국과 일본간의 매개자 역할 수행능력, 그리고 한국의 강력한 근대적 정치사회 발전 기반 등을 고려해서 나온 생각이다. 이와 같은 동북아 개념은 한반도 문제 곧, 남북관계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도 연쇄적으로 적용된다. 남북한 관계를 동북아 질서의 틀 속에서 풀어내고, 동북아 질서의 구축을 통해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켜나가겠다는 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될 경우 ‘통일’이라든가 ‘대북정책’ 역시 이 교수가 볼 때는 이젠 낡은 개념일 뿐이다.

물론 그의 논지가 현 정부의 ‘동북아시대’ 구상을 지지하는 입장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체제론자로서의 예리한 관찰과 명석한 분석의 결과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국가발전은 늘 제로섬 관계라는 엄연한 사실, 그리고 현 단계 세계자본주의가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경우 동북아 담론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스럽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학문적 분석과 실천적 참여가 세계체제론을 통해 성공적으로 합치할 것인지 조용히 기다려 본다.

전상인 한림대교수·사회학 sijun@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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