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후보자들▼
2일부터 본격 선거전이 시작된 총선 현장에서는 향우회나 동창회 명단을 들고 표를 흥정하는 선거 브로커가 사라진 대신 자신을 알리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변칙 기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틈새 뚫기 아이디어=부산 남을의 열린우리당 박재호 후보는 2일 오전 선거사무실에서 지역개발 공약이행 타임캡슐 봉인식을 갖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당선되면 임기 4년 뒤 타임캡슐을 꺼내 공약 이행 여부를 점검받겠다는 것이 박 후보의 설명이다.
강원 춘천의 한나라당 허천 후보측은 선거운동 기간에 유급사무원 2명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거리에서 매일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부산 부산진을의 한나라당 이성권 후보는 자전거를 타고 유세차량을 뒤쫓아 가면서 유세 내용에 대한 평가와 유권자의 희망사항을 별도로 수집하는 ‘파랑새 모니터단’을 운영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 서귀포-남제주의 한나라당 변정일 후보는 남제주군 성산읍에서 서귀포를 거쳐 대정읍까지 90km를 도보로 행진하며 현장 목소리를 듣는 ‘뚜벅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경남 진주을의 무소속 강갑중 후보는 천막 선거사무실을 짓고, 운동원과 함께 3보1배(三步一拜) 고행을 하며 지지를 호소 중이다.
▽돈 선거 금지를 역으로 활용한다=대전 중의 열린우리당 권선택 후보는 텅빈 양복 안주머니를 보여주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 권 후보는 “식당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미리 ‘돈을 쓸 수 없어, 아예 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대전 서을의 한 후보도 “돈을 가지고 다니면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며 “아예 지갑을 소지하지 않는 게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탈법 조장하는 선거대행사=각 후보자 사무실에는 ‘유권자의 고향을 파악해 주겠다’며 탈법을 유혹하는 선거대행사의 홍보물이 범람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공공연하게 선거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것처럼 돈을 지불하면 자사 직원들을 후보자의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전화홍보나 e메일 발송 서비스까지 대행해 준다고 선전하고 있다.
서울 강북의 한 후보 선거사무실 관계자는 “선거법에 걸릴까봐 선뜻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솔직히 선거 막판에 초조해진 후보들은 솔깃해할 만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갖가지 묘안이 백출하고 있는 데 대해 선관위측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기상천외한 불법 수단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단속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총선취재팀>
▼시큰둥한 유권자들▼
선거법상 어깨띠를 두르거나 명함을 나눠주는 행위를 후보자만 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이 극히 제한되자 1일 본보 취재팀이 돌아본 표밭현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은 상태였다.
곳곳에서 후보가 명함을 나눠주는 것을 보고도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지”라고 유권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는 장면이 적지 않게 목격됐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이완선씨(22·대학생)는 “지금이 선거 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후보의 명함을 받고서야 알았다”며 “선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썰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후보마다 확성기를 들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찾아 개인 연설을 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이를 듣는 사람은 어쩌다 한두 명뿐, 대부분은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흘끗 한번 쳐다보는 정도다. 인천 남구의 한 후보 개인연설회장을 지나던 김형철씨(38·자영업)는 “시간도 없고, 정치인의 말은 워낙 식상하기도 하고…”라고 냉담하게 말했다.
출마 후보 5명 모두가 정치 신인인 전북 전주 완산을 지역에 사는 김성택씨(45·전주시 효자동)는 “우리 동네 출마 후보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솔직히 없다”며 “알 방법도 마땅치 않고,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며 시큰둥해 했다.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이종수씨(54·공무원)는 “선거구에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고 하는데 얼굴 한번 볼 기회가 없다”며 “선거운동을 제한만 할 것이 아니라 동별로 정당연설회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선거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 서구 대신동 김효영씨(37·주부)는 “집에 몇 가지 홍보물이 오기는 했으나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볼 시간이 없어 홍보물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
<총선취재팀>
▼총선현장 취재팀▼
▽서울=이헌진 이완배 정원수 길진균 정양환 조이영 유재동 전지원기자
▽인천=박희제 차준호 황금천기자
▽경기=남경현 이동영 이재명 전창기자
▽강원=최창순부장
▽대전 충남=이기진 지명훈기자
▽충북=장기우기자
▽광주 전남=김권 정승호 이정은기자
▽전북=김광오차장 김동원기자
▽부산=조용휘 석동빈 최재호기자
▽울산=정재락기자
▽경남=강정훈차장 김재영기자
▽대구=최성진차장 정용균기자
▽경북=이권효 조경복기자
▽제주=임재영기자
▽전국 순회 사진취재= 서영수 김경제차장 안철민 김동주 이훈구 원대연기자
▼선거부정 고발접수▼
▽전화 02-2020-1210(정치부)
02-2020-1240(사회1부)
02-2020-1250(사회2부)
▽e메일 vote41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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