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

  •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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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봄은 봄이 아니다. 벚꽃잎 난분분(亂紛紛)하고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들 마음에 닿지 못하면 봄은 저만치 혼자 흘러갈 뿐이다. 그렇게 봄날은 흐르고 청와대 주인은 어느새 풍경이 되었다.

풍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무현을 미워하는 사람들’간에는 봄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한숨이 그 사이를 떠돌 뿐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어차피 총선 뒤로 미뤄졌다. 총선 결과가 헌재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총선은 총선이고 탄핵은 탄핵이라는 논리 또한 무력한 것은 아니다. 이래저래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한숨은 깊어진다.

이들의 염려는 그들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탄핵에는 반대한 것처럼 모순적이다. 대통령이 그예 탄핵될까 염려되고, 복귀하면 어떨까 염려한다. 탄핵된 뒤의 상황을 예측하기란 끔찍하다. 그러나 복귀한 뒤의 상황도 걱정스럽다.

아직도 비주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대통령이 행여 ‘승자(勝者)의 보상’을 요구할지 모른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승자의 완장’을 차려할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염려는 여기서 우려로 바뀐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면 설령 승자가 된다고 한들 노무현 정권은 패자(敗者)가 될 수 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된들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열린우리당은 그 어떤 공약보다 그런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점을 약속해야 한다. ‘탄핵 심판론’은 그만 내세워도 된다. 그보다는 탄핵 심판 뒤에 이 갈라진 공동체를 어떻게 화해시키고 통합해 나갈지를 말해야 한다. 그동안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혔다면 발목을 잡히지 않으면 무얼 할 수 있고,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이 일은 열린우리당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전체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고 비워야 한다. ‘대통령 된 것이 원죄(原罪)’라는 식의 꼬인 마음부터 풀어야 한다. 일거에 주류세력을 바꿔야 한다는 독선(獨善)의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염려를 덜어줘야 한다.

‘10분의 1’이 어떻고 할 게 아니라 ‘자기 청소’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 측근은 물론 열린우리당과 그 주변에서도 더는 불법과 비리가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선거법 위반 혐의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1등이고 비리 연루자도 버젓이 공천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등한 것은 그들이 갑자기 잘 해서가 아니다. ‘탄핵 역풍(逆風)’ 덕분이다. 그렇다면 겸허하고 신중한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렇지 못한 데서 ‘60, 70대는 투표하지 말고 쉬셔도 좋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오만해진 데서 총선 승리 후 ‘성골(聖骨) 진골(眞骨)을 나눠야 한다’는 섣부른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다.

▼진정 염려하는 건 나라의 장래 ▼

임기 5년의 대통령이 불과 13개월 만에 직무가 정지된 것은 나라에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는 탄핵사태가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야당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자초해 나라와 국민에 씻기 힘든 누(累)를 끼쳤다고 자성(自省)해야 한다. 자성하기에 봄날의 청와대는 좋은 곳이 아닌가. 오랜만의 침묵 속에서 새싹의 돋음과 개화(開花)의 이치를 되새길 수 있다면 4월은 결코 잔인한 달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봄날의 수군대는 불안감과 소모적인 적대감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노무현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염려가 기우(杞憂)였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 염려하는 것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나라의 장래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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