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13>한국의 민주주의는 성공할수 있는가

  • 입력 2004년 4월 7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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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를 겪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 기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오는 법. 이 혼란을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이 도약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주성 교원대 교수(52·정치학)가 김희준(20·고려대 정치외교학과 2년), 박상순씨(19·서울대 법대 1년)와 김은영양(17·충북 청주시 흥덕고 2년)을 만나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과 그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를 겪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 기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오는 법. 이 혼란을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이 도약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주성 교원대 교수(52·정치학)가 김희준(20·고려대 정치외교학과 2년), 박상순씨(19·서울대 법대 1년)와 김은영양(17·충북 청주시 흥덕고 2년)을 만나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과 그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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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김주성 교수=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뒤 벌어졌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논쟁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선거 결과 노태우씨가 당선되자 진보세력 쪽에서는 군부집권의 연장이라고 항의하며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절차주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발전이었어요. 실질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당시 진보세력도 1990년대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는데, 이번에 탄핵을 계기로 다시 실질적 민주주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지요.

▽박상순=이번 탄핵의 경우 절차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국회의원들의 의식과 국민의 의식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사이에 괴리가 있어요. 이는 우리가 처음 절차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절차’를 제정하면서 그 ‘절차’에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희준=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로 추구해 온 것 같아요. 그러나 민주주의 선진국들을 보면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구현됩니다. 이번 대통령 탄핵의 경우도 국민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법률적 절차의 타당성만 고려하니까 국민들로서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김 교수=1987년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바꿀 때 만일 민주적 인물만 당선되도록 절차를 만들려 했다면 군부세력이 대통령 직선제에 합의해 주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일단 직선제라는 ‘절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후 군부세력이 밀려나고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다고 봐요. 이번 탄핵 건도 일단 그 절차를 인정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본 뒤 미흡한 점이 있으면 다시 그 ‘절차’를 보완해 나갈 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어요.

○생활 속의 민주주의

▽김은영=얼마 전 정부에서 EBS 수능 방송을 한다고 발표하자 학교에서도 이를 수업에 반영한다고 공고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언제나 이런 식이고 보니 학교에서 지키라는 규칙은 모두 ‘어떻게 하면 안 들키고 안 지킬까’ 하는 것만 생각하게 돼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100%가 손들었어요. 그 이유는 ‘촛불집회 하는 게 멋있어서’라는 것이었지요. 선생님은 저희가 너무 사회의식이 없다고 나무라지만 오전 2∼3시까지 입시공부만 하는데 언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민주주의를 배우겠어요.

▽김 교수=사실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익힐 기회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우리 법은 대부분 서구로부터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 맞는 것도 많아요. 그렇다고 법을 다 사문화시키면 곤란하겠지요. 흔히들 법에서 벗어나는 데서 해방감을 느끼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법을 지키는 데서 자유를 누리도록 해야겠지요.

▽박=미국에서는 헌법을 ‘시민종교’라고 한다더군요. 일상생활에서 법을 느끼고, 살면서 정의나 민주주의를 실현해 간다는 것이지요.

▽김희준=김 교수님은 절차의 준수를 통한 안정을 중시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만일 현 상태에서 안정을 추구한다면 이 자리에 주저앉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야간 시위로 법을 좀 어긴다고 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아닐까요.

김주성 교수는 좌담에서 “진정한 민주시민이라면 법에서 벗어나는 데서 해방감을 느낄 게 아니라 법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희준씨, 김은영양, 김주성 교수, 박상순씨. -박주일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김 교수=법은 지켜야 하지만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할 때 문제가 계속 생기면 유연하게 해석해 국민이 법을 지키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간집회도 봐줘야 하지 않느냐’고 미리 요구할 수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법을 지키는 쪽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해요. 그러다가 시대정신이 강하게 요구하면 헌법을 바꾸기도 하지만…. 이때도 역시 ‘절차’에 근거해 절차를 바꿔야 해요.

▽김은영=요즘 정국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찬성 또는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반대 의견도 이해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쳐 나갔으면 해요.

▽박=국회만 봐도 과거에 비해 연령, 출신 등이 다양화됐어요. 얼마 전 처음으로 헌법재판관에 여성이 임명됐는데 이것은 단지 여성 한 명이 새로 들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가치관이 헌법재판에 반영된다는 것이겠지요. 입법, 사법, 행정이 모두 이런 변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김희준=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잖아요. 현재 정국 상황은 불안정하지만 국회의원들도 이 기회에 환골탈태하려 하고 있고, 정치에 수동적이던 국민도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최근의 혼란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발 더 나아가려는 과도기적 단계라고 봐야 할 겁니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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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해 읽어볼 만한 책▼

▽사회정의론(존 롤스·철학과현실사)=20세기 후반에 정치철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낸 현대의 고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본 민주주의의 핵심과제.

▽1984(조지 오웰·문예출판사·민음사)=현대사회에서 독재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꿰뚫어본 소설.

▽정치적 자유주의(존 롤스·동명사)=다양한 신념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민주정치가 어떤 원리로 운영돼야 하는가를 제시.

▽서양의 지적 운동(김영한 임지현·지식산업사)=민주주의를 비롯해 서구의 지적 조류를 쉽고 깊이 있게 설명.

▽그리스 민주정의 탄생과 발전(윌리엄 포레스트·한울)=그리스 민주주의의 성립과 운영 과정 및 그 성공과 실패 원인을 설명.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철학과현실사)=자유주의 철학의 고전. 개인과 사회 및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규명.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임혁백·서광사)=민주주의의 기본 문제와 한국의 정치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시각을 제공.

▽직관과 구성(승계호·나남출판)=저명한 재미 철학자인 승계호 미국 텍사스대 석좌교수의 명저. 현대정치철학의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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