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디어선거는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 공개의 광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피상적인 감성 토로의 장이 되기도 한다.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후보자간 TV토론 및 합동방송 연설회의 경우 다소 무리한 주제 선정과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방 등으로 운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행정수도 대책, 청년실업 문제, 사교육비 대책 등의 주제는 대선토론인지 총선토론인지를 헷갈리게 하고 있고(서울 동대문을), 탄핵 등 중앙정치에 치우친 토론(전남 목포)도 지역대표 선거토론으로서는 적절치 않았다. 최근 충주지역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는 인신공격과 상호비방이 난무하기도 했다.
지역발전의 청사진과 개별 후보의 인물됨을 검증한다는 당초 TV토론의 취지가 실종된 셈이다.
인터넷의 경우는 정보제공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선관위는 물론 거의 모든 후보와 정당이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들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네티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팬클럽을 인터넷상에 만들어 후원활동을 하고 각종 인터넷신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선거의제와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비정치적인 목적으로 출발한 디씨인사이드(디지털 카메라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의 토론방에는 3월 12일 탄핵안 가결 이후 25일 만에 2만개가 넘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 토론방의 역사로 보아 가히 메가톤급이라고 할 수 있다. 네티즌들의 관심이 컸던 미군 여중생 살해사건(2002년 11월 29일∼2003년 3월 13일·3321건), 유승준 입국 찬반논쟁(2003년 5월 30일∼2003년 7월 30일·2365건)과 비교해도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게시판에는 각종 동영상과 네티즌들의 재기 넘치는 유머 및 패러디도 있지만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한 욕설과 근거 없는 비난성 글도 많다.
즉흥적인 판단에 따른 반(反)이성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획일주의를 엿보게 하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간간이 자신의 입장을 차분한 논리로 풀어나가면서 이성적인 판단을 촉구하는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동원에 의한 ‘우매한’ 군중이 아닌, 토론과 숙의를 통한 ‘영리한(smart)’ 군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따라서 미디어 선거, 특히 인터넷을 통한 선거전이 민주주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 면만 강조할 수 없다. 그러나 오래된 정치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고, 따라서 정치권은 새로운 정치방식에 시의적절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대표집필=유석진 서강대교수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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