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종훈/무사안일 수돗물 행정

  • 입력 2004년 4월 11일 19시 20분


환경부는 3월 말 제주도 유엔환경계획(UNEP) 총회 기간 중 각국 대표단에 ‘한국환경정책 홍보자료집’을 배포했다.

우리의 깨끗한 수돗물 관리정책을 자랑한 내용이었다. ‘먹는 물 수질기준 항목을 55개로 확대하는 등 수돗물 공급체계 전반의 위생관리를 강화했다. 바이러스를 99.99%까지 제거할 수 있는 정수처리 기준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도입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환경부의 자랑은 알고 보니 낯 뜨거운 자찬(自讚)이었다.

환경부가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전국 424개 정수장의 수질을 검사한 결과 무려 41개가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그간 지방자치단체의 수질검사 보고를 토대로 지난해 전국 정수장의 수질기준 위반율이 1%에 불과하다고 말해 왔는데 실제로는 그 10배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 것.

게다가 환경부는 올 초 이런 정수장 실태를 알고도 3개월 넘게 쉬쉬하다 4월 8일에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한 환경부 당국자들의 답변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조직 개편과 업무 인계인수 때문에 간부들이 최근까지 수질조사 결과를 몰랐다.”(Y국장) “지역별로 수질오염 측정과 점수배정 기준이 다른 데가 있어 이를 조정,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Y과장)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수돗물 관리실태 보고보다 조직 개편이나 인사이동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아니면 점수 배정 문제를 확인하는데 석 달이나 필요하다는 뜻인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말뿐이다.

환경부는 “지자체의 보고를 믿은 죄밖에 없다”며 억울한 표정이다.

하지만 최근 울산시의 수질 조작보고 사건으로 드러났듯이 일부 지자체가 수질검사 결과를 거짓 보고하고 있다는 의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환경단체들은 “정부 발표만 믿고 대장균이 득실거리는 수돗물을 먹어온 서민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항의하고 있다.

이번 일로 환경부의 무사안일과 탁상행정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수돗물 행정에 대한 전면적인 정비와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이종훈 사회1부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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