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민노당 후보 찍으면 死票” 주장

  • 입력 2004년 4월 13일 18시 46분


열린우리당 유시민(柳時敏·사진) 의원이 13일 “권영길(權永吉·경남 창원을) 후보 등 2곳을 제외하면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는 표는 사표(死票)이므로 지역구 투표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민노당과 지지자들이 “세가 불리해졌다고 다른 세력을 죽여 반사이익을 보려는 구태”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그동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등은 “민노당의 원내 진입을 환영한다”며 민노당에 우호적 입장을 밝혀 왔다.

유 의원은 이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기자간담회 등에서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1인2투표시 정당표는 민노당에 주더라도 후보표는 열린우리당에 던지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또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과는 상충되는 거대 야당의 부활 저지가 우선 추구해야 할 가치”라며 “오늘부터 민노당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 의원의 주장은 민노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동층에 보낸 ‘SOS’로 볼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 등 20∼30개 지역구가 1000표 안팎으로 승부가 갈릴 초경합 지역으로 상황이 변했기 때문. 그가 “열린우리당이 압승한다고 판단해 민노당에 표를 던지려는 유권자들에게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린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민노당측은 “집권 여당이 엄살도 모자라 앵벌이를 하고 있다”며 격분했다. 노회찬(魯會燦) 선대본부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기 당 의장 걱정이나 하지 왜 남의 당 표가 사표가 되는 것까지 걱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민노당 후보들과 지지자들의 반응도 비난 일색이었다. 네티즌 ‘촌당원’은 “민노당을 열린우리당의 2중대로 폄훼하려는 것인 만큼 열린우리당 후보 낙선 운동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유 의원과 같은 지역구(경기 고양 덕양갑)에 출마한 정경화 후보는 “이미지와 이벤트로만 정치하니까 국민이 돌아선 것인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노당 지지자들이 항의하기 위해 대거 몰려 유 의원의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

친민노당계 논객인 진중권씨도 이날 인터넷 ‘진보누리’에 올린 글에서 “노무현에 대한 환상은 이미 다 깨졌다. 징징 짜며 앵벌이하는 것을 불쌍하게 봐 줄 사람이 없다. 쇼하지 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유 의원은 홈페이지에 다시 반박문을 올려 “민노당은 성역이 아니다”고 맞섰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개혁국민정당 출신인 한 당직자는 “민노당의 열린우리당 비난 공세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응 조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른 당직자는 “지난 대선 때는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표를 잠식한 랠프 네이더의 예를 들며 민노당 지지자들의 ‘U턴’을 촉구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며 “노동계를 중심으로 역풍이 이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당직자는 “‘같이 가자’고 했던 민노당을 상황이 어렵다고 ‘팽(烹)’하겠다는 태도가 물불 안 가리는 권력욕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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