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2차 반박 전문

  • 입력 2004년 4월 13일 19시 32분


다음은 진중권씨가 13일 오후 3시 '진보누리'에 올린 글 전문.

▽유시민 의원께, 열린우리당의 진짜 위기는? ▽

정동영 바람 타고 한나라당 애들 재결집하는 게 아닙니다. 유의원은 사태를 너무 널럴하게 보고 계십니다. 그깟 선거야 어차피 과반수 넘거나 모자라게 먹는 게임의 영원한 반복 아닙니까? 선거 한다고 한나라당이 없어지겠어요, 아니면 열린우리당이 없어지겠어요? 이거, 동일자의 영겁회귀입니다. 쟤들이 잡으면 북괴가 내려온다, 쟤들이 잡으면 차떼기가 몰려온다, 서로 공포정치하는 거. 이거 영원한 현상입니다. 제가 장담하죠. 4년 후에도 여러분 똑같은 얘기하고 있을 겁니다.

유의원이 봐야 할 것은 정치적 지형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열린우리당의 위기입니다. 유의원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보수"로 규정하셨지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점점 더 보수적 색채를 강화해 갈 것입니다. 또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왜? 이미 진보의 아젠다는 민주노동당이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그 부분까지도 열린우리당이 먹고 들어갔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진보적 의제는 이제 민주노동당이 담당하고, 열린우리당은 제 정체성을 새로 규정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지지세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요. 주로 어떤 층에서 확산되는지 보세요. 먼저 지식인, 문화계, 영화계, 법조계와 같은 담론생산자층입니다. 이들이 민주노동당으로 돌아선 것은 이제 진보적 의제를 열린우리당에게 투사하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열린우리당을 위해 말을 퍼뜨려주던 사람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로 인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지원화력은 앞으로 대폭 감소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열린우리당을 위해 말을 해줄 사람들이 적어도 진보진영에는 거의 없게 됐다는 얘기죠.

하지만 더 큰 위기는 그게 아닙니다. 이제까지 민주당/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서민의 이해를 대변해 온다고 선전해 왔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시민의 40%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진보'로 착각한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있었지요? 문제는 바로 이 大시나리오가 무너지게 되었다는 거죠. 노동자들, 민주노동당으로 왔습니다. 농민들, 비판적 지지에서 벗어나 역시 민주노동당으로 왔지요. 듣자 하니 노점상 연합에서도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했다고 하네요. 환경미화원 동지들의 집단 입당도 있었고...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은 상부구조에서는 진보적 아젠다를 설정할 능력을 잃었고, 하부구조에서는 노동자, 농민, 빈민, 서민들이라는 대중적 토대를 잃어버리게 됐다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열린우리당의 진짜 위기입니다. 유의원 정도 라면 선거에 눈이 뒤집혀 그깟 몇 석 더 얻으려고 지지자들 불쌍하게 앵벌이나 시키는 수준을 넘어,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한계를 보고, 뭔가 전략적인 대책을 내놓으셔야지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유치하게...

독일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보니 " Sammelbecken"이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한 마디로 "잡탕"이라는 말이죠?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그러고 보면 문성근-명계남-유시민씨 사이에는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겠지요. 위에서 제가 지적한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동시에 유시민 의원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왜? 유시민-문성근-명계남을 잇는 "잡탕" 내 개혁파들은 보수잡탕에 있으면서도 진보진영의 레토릭을 구사하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열린우리당은 보수정당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유시민-명계남-문성근이 구사하는 진보적 레토릭도 당내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죠.

민주노동당과 '전면전'을 선포하셨다구요? 그건 아마 유시민 의원 개인의 전쟁일 겁니다. 유의원이 존재가치가 바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위치하면서 민주노동당 올 사람을 열린우리당으로 보내는 데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효용가치를 입증하려고 하시는 모양인데, 상황이 대선 때와는 다릅니다. 그거, 별 효과 못 볼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유시민 의원의 약발도 다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요. 그러면 유시민 의원 개인의 위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유시민 의원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중에 헌신짝처럼 차버린 개혁당의 어느 분이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을 조직하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옛날 개혁당 사람들, 다 노무현을 밀었지만, 지금 개혁당 사람들, 열린우리당 밀지 않습니다. 열린우리당 밀 사람들은 이미 다 개혁당에서 나와서 제멋대로 그 재산 들고 열린우리당으로 적을 옮겼지요. 그러니 유시민 의원의 처절한 마지막 호소에 귀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이깟 선거의 득표에 관련한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의 위기입니다. 유시민씨도 그 동네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껍데기만 남은 그 개혁적, 진보적 레토릭을 내버리시고, 보수주의자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합당한 논리를 개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한 이상, 유시민씨의 빈껍데기 진보의 착시 효과도 소용없게 된 것입니다. 진보, 우리한테 맡겨 두시고,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 볼 때가 되지 않었나, 생각합니다.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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