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김병익 칼럼]기대를 안고 투표장으로

  • 입력 2004년 4월 14일 18시 50분


“국회의원은 어떻든 국민들보다 똑똑하지. 그들이 잘나서 의원이 되었다면 물론 그런 것이고, 그들이 못났다면 그걸 모르고 선출한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거든”이라고 젊은 철학도 버트런드 러셀이 친구에게 말했다. 오래 전 러셀의 자서전에서 본 이 구절이 지금껏 기억되고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러셀의 말이 맞지만 실제에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경우를 숱한 선거와 그 결과에서 확인했던 탓일 게다. 러셀의 말투는 비아냥대는 투였고 나도 그 비아냥거림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는 정색하고 우리보다 잘난 ‘선량’이 뽑히기를 각별하게 기대해 본다. ‘각별하게’라고 써야 할 이유가 있다.

▼선거문화 희망적인 변화 조짐 ▼

우선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자금과 운동이 엄격하게 통제돼 이른바 ‘선거문화’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만이 아니라 관계기관의 태도도 달라졌고, 후보들도 그래서 극히 몸조심하고 있으며, 그래야 할 만큼 시민들의 의식도 좋아진 모습들이 보인다. 선거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민의의 바른 표출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고, 선거운동이 투명해지는 것은 그 원칙이 제대로 실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선거 때마다 선보이던 부정과 혼탁의 관행들이 이번에는 사라질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입후보자와 유권자가 새로운 선거체제에 잘 적응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가 그만큼 착실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후보 개인과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1인2표제가 실시된다는 점도 내게는 중요한 관심사다. 아마도 내각책임제에서 주로 채용되고 있을 이 투표 방식은 무엇보다 사표(死票)로 사라질 소수 의견들을 의회에 반영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이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해 의회에 진출할 수 없던 군소 정당들도 국회에 비례대표를 투입할 수 있을 것이어서 다양한 소수 의견들이 국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후보 개인과 정당의 선호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지긴 하겠지만 정당에도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앞으로 정당들로 하여금 정강정책을 중시할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후보자들이 밀실에서가 아니라 심사위원회를 거쳐 공개적으로 공천을 받게 된 점도 매우 희망적인 변화다. 과거의 공천 시스템에서는 여당은 집권자에 대한 충성심을 담보로, 야당은 정치자금의 갹출 규모로 공천자를 지도부의 일방적인 뜻에 따라 결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희망자의 인품과 능력, 지역구의 여론 등을 놓고 당 내외의 인사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후보자를 선정했다. 이 시스템 변화는 기존의 정치적 폐습을 극복하는 중요한 단서로 기능할 것이다. 여성 후보자 수의 약진과 장애인의 공천도 이 시스템 덕분이다.

▼정치적 보혁구도의 첫걸음 ▼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여야가 진보와 보수의 경쟁으로 대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당 때의 부정선거, 유신과 신군부 시절의 민주-반민주, 3김 시대의 지역감정으로 쟁점 대결해 오던 우리 총선의 역사에서 아마도 처음이라 할 이 이념적 대결은 대통령 탄핵사태로 분위기가 어지럽고, 보수-진보의 정책적 구분이 분명치 않으며, 지역감정이 되살아나고 무엇보다 신구(新舊) 세대간의 감정적 대립으로 그칠 취약성을 보이고는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같은 세대간의 정치적 보-혁 구도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은 분명하다.

오늘 나는 투표장으로 가면서 내 기대가 얼마나 채워질지 궁금해진다. 총선의 결과가 나올 내일, 우리의 기대와 실제가 어느 만큼 합치할 수 있을지, 정말 우리보다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선출돼 앞으로의 한국 정치문화의 발전이 희망적일지 밝히 보고 싶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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