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중국 국경도시 단둥(丹東)에서 만난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목격자들은 놀란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용천역과 단둥 사이는 채 20km가 되지 않는 거리지만 단둥의 표정에서는 용천역의 사고가 좀처럼 감지되지 않았다.
물자를 실은 트럭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북한을 향했고, 북한 1일 관광도 변함없이 이뤄진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북한인들이나 중국동포들은 용천역 사고현장 주변에서 목격하거나 들은 얘기를 전하면서 “북측이 사고 발생 사실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폭발 순간=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19∼21일)을 마치고 특별열차로 용천역을 지난 지 9시간여가 지난 22일 정오경.
김 위원장의 열차가 역을 통과한 뒤라 용천역 관계자들은 ‘비상상황’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있던 시간이었다.
용천역 운전반(지령실)은 김 위원장의 열차 통과를 위해 역 바깥으로 소개했던 화물열차들을 재배치하기 위해 조차공(선로교체 담당자)과 기관사들에게 분주하게 지령을 내렸다.
용천읍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고막이 터질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물을 실은 화물열차가 산산조각 나면서 파편이 하늘로 치솟았고, 이어 검은 구름이 이 일대를 뒤덮었다.
분진은 북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신의주 일대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발은 강력했다.
역 주변 상가와 아파트가 허물어지고 유리창은 모두 깨졌다. 인근 보위부 건물과 학교 등 4개동의 건물도 완전히 붕괴됐다. 붕괴된 학교는 역에서 약 200∼300m 떨어져 있다. 수업 중이던 학생들과 주민 상당수가 무너진 건물에 깔렸고, 누런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용천역 인근에 밀집한 주택가의 모습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전해진다. 집밖으로 뛰쳐나온 주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허둥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읍내 곳곳에 폭발의 흔적으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용천역 일대는 융단폭격을 받은 직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단둥 표정=단둥 지역에는 북한을 오가는 무역상 등을 통해 전해진 피해상황에 대한 각종 소문이 난무했다. 사망자가 3000명에 이른다거나 부상자가 7000명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폭파현장에 10m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다는 말도 나왔다.
오후 들어 피해규모가 하나둘씩 자세히 전달되고, 피해 규모도 예상보다 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단둥의 분위기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용천에 거주하는 친척(화교)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용천으로 향하는 단둥 거주 중국인들의 차량행렬이 목격되기도 했다.
▽사고수습 노력=북한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들어갔으며 용천읍 일대의 출입을 막았다. 이로 인해 용천역 인근에는 군인 외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폭발사고로 국제전화선도 단절됐다.
특히 북한 당국은 용천역 주변을 지나는 차량을 모두 징발해 현지 구조작업에 투입했다.
그러나 북한 방송과 통신은 폭발사고 소식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결과와 멕시코에서 ‘김정숙 교육문화연구소조’가 결성됐다는 소식만 주요뉴스로 내보냈다.
사상자들은 사고 직후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료장비 및 운반 차량 부족으로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즉각 지원 의사를 표시했다. 단둥의 병원들도 북한에서 미처 수용하지 못한 환자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북측으로부터는 아직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단둥=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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