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北지원 창구 모색해야▼
사고는 우발적인 것이었지만 피해는 북한 당국이 키운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 없이 벽돌과 나무로만 쌓아올린 건물, 그저 비바람만 막을 정도인 흙으로 만든 지붕과 담. 이런 상황에선 이번처럼 대형사고가 아니라 단순한 자연재해에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배경에는 수십년 동안 ‘주체경제’를 고수해 온 결과 지극히 낙후되고 취약해진 북한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도와야 한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현실과 재난 복구 능력을 감안하면 인도니 동포애니 하는 명분을 따질 여유도 없다. 정부와 민간이 너나없이 북한동포 돕기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구호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북한경제의 회복 지원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임을 잊어선 안 된다. 용천 폭발참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으로부터 경제지원 약속을 받고 돌아오던 날 발생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현재 진행되는 대북지원의 방향과 방식을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다. 각 지방자치단체, 각종 단체와 협회 등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이 혹시라도 ‘생색내기’나 ‘얼굴 알리기’ 차원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지원능력이 부족한 민간단체가 북측과 무턱대고 지원 합의를 했다가 이행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남북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민간 지원과 정부의 단기 구호는 대한적십자사로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 좋다. 일회성 물품 이외에 주택, 보건 의료시설, 공공기관, 학교 등의 복구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둘러싼 민관의 역할 분담 및 대북협의도 필요할 것이다.
용천은 북한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으로부터 각종 원자재가 들어오는 길목으로 북한경제에 중요한 물류기지다. 이 점에서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가동해 용천의 산업시설 복구지원 등 장기적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계기로 체계적인 남북 경제협력방안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은 26일 판문점 남북 연락관 접촉에서 긴급구호물자의 육로수송을 거부하고 의료진과 병원선 파견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료진이 구성돼 이미 활동 중”이라며 거부했다. 또 북측 재해대책위원장은 철강 시멘트 유리 석유 등이 절실하다고 하면서도 의약품과 생필품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열악한 경제수준과 재난대처 능력을 감추기 위한 것인지, 또는 북한 사회 특유의 자존심의 발로인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진의와 참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보내는 식의 지원은 곤란하다.
▼개혁-개방 인식 새롭게 하길▼
북한 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개방과 개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스스로의 표현처럼 ‘자본주의 바다에 뜬 외로운 사회주의 돛단배’식의 폐쇄적인 체제로는 결코 경제회생을 이룰 수 없다. 북한 당국이 이례적으로 사고 직후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외부 지원을 계기로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이 가속화될 수 있어야 한다. 남한이 진정한 협력의 대상이고 가장 믿을 수 있는 형제라는 점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말은 남북한 모두에 적용된다. 북녘 동포에게 위로를 보내며, 부디 이번 참사가 새로운 북한,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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