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은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여야 내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우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총선 이후 정당대표로서는 처음으로 27일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해 개헌 논의에 불을 댕겼다.
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소신엔 변함이 없다”며 “당 내에서 4년 중임제 개헌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9일로 예정된 당선자 연찬회 의제엔 제한이 없다”며 연찬회에서 개헌 문제를 공론화할 것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장영달(張永達) 의원은 26일 당선자 워크숍에서 사견을 전제로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했다. 장 의원은 27일에도 “개헌 논의를 나중에 하자는 말이 있지만 다음 선거가 가까워지면 오히려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노회찬(魯會燦) 사무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6대 대선 공약을 통해 대통령은 임기 4년에 중임을 허용하고, 대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헌 논의가 당장 현실화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먼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으로선 개혁 드라이브가 돌발적 개헌 이슈에 묻혀버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개헌 논의를 섣불리 진행시켰다가 자칫 수의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 내에서 장 의원의 주장을 사견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동영(鄭東泳) 의장은 “공감대는 있지만 타이밍이 중요한데 국민이 지금 그것(개헌)을 원하겠느냐”고 신중함을 보였다.
한나라당 박 대표도 4년 중임제 개헌론을 당장 추진하기보다는 일단 공론화 자체에 가치를 두는 모습이다.
박 대표가 이날 ‘2008년이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가 동시에 끝나게 돼 개헌 논의를 하기에 적기(適期)’라는 지적에 대해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 소신이 당론으로 결정되기 위해선 당 내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도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4년 중임제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상태여서 계기만 주어지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17대 총선으로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 여권 내부에선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폭넓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내각제를 선호하는 중진들은 17대 국회 진입에 실패한 반면 4년 중임제 개헌을 제기한 소장파 의원 대부분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돼 당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양양=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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