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이 산행 길에 약수터에 들렀다. ‘세수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법조문대로’ 대법관이 마시고 남은 물을 손에 부었다. 다른 대법관이 “세수금지라고 써 있는데 왜 법조문대로 하지 않고 손을 씻느냐”고 따졌다. ‘법조문대로’ 대법관은 ‘세수(洗手)금지’는 얼굴을 씻지 말라는 뜻이므로 손을 씻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손 수(手)자가 들어가 있으므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손을 씻어선 안 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약수터의 단순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에 적용할지를 두고서도 이렇게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국회에서 만든 법조문을 재판에서 적용할 때 법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종교교리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병역법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의 입영거부 행위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고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를 거론했지만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국토방위 의무도 부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판례를 뒤엎는 이번 판결이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1심 법관의 1회성 ‘튀는’ 판결로 그칠 공산이 현재로 봐서는 크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공론의 장(場)에 올렸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젊은이들이 교리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소수자의 인권 차원으로 좁게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에 안 가는 것이 대단한 특혜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특정종교 교인들에게만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주었을 때 다른 종교에 대한 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년의 청춘을 병영에서 보내는 훨씬 더 많은 젊은이들의 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에 대한 위헌제청 신청을 한 지 2년이 넘도록 결정을 미루고 있다. 헌재가 결정시한인 180일(훈시규정)을 넘겨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헌재의 위헌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입법기관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법률 해석의 정도(正道)다.
이 판결 하나를 놓고 법조계를 진보, 보수로 나누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조문의 구체적인 해석과정에 진보, 보수가 끼어들 여지는 넓지 않다. 이 판사가 참여한 ‘우리법연구회’ 모임에서도 비공식 표결 결과 7명 가운데 5명이 현행 병역법상 유죄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이나 대체복무 제도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의 입법기능을 통해 해결할 일이다. 법관의 해석론은 법조문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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