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韓美동맹]<3>다시 손에 손잡고 미래로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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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총선’을 포기한 것입니다.”

2003년 10월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미 정부 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진보세력의 파병 반대 압력을 뿌리치고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방한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한국이 이라크에 추가 파병하는 이유는) 미국이 50여년 전 (6·25전쟁 때) 미국의 젊은이들을 한국에 파병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혈맹(血盟)으로서 보은(報恩)을 해야 한다는 암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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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결단’과 ‘보은’이 갖는 어감의 차이만큼이나 한미 양국의 서로에 대한 인식에는 거리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인식차에서 비롯된 불신감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를 되찾은 일이 건강한 동맹관계 회복의 선결과제라고 양국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불신 해소가 급선무=최근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결정과 통보 과정은 양국간의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20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결정이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지연에 대한 미국의 감정적 대응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인식은 이와 전혀 다르다.

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의 22일 여론조사에선 이번 차출 결정의 이유로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늦어지자 압박 차원에서’(38.9%)란 응답이 가장 많이 꼽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해외주둔 미군 전력의 재배치 차원’이란 응답은 5명 중 1명 꼴(21.7%)에 불과했다.


▽세대 갈등 극복해야=한미동맹은 1950년 6·25전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양국 사회의 ‘주류세력’은 이제 ‘전후세대’로 대부분 교체됐다.

4·15총선 당시 유권자(3559만6497명) 가운데 전후에 출생한 40대 이하는 69.9%에 달했다. 탈냉전 세대인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기엔 냉전적 ‘군사동맹’의 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동맹경화증’ 또는 ‘동맹피로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문정인(文正仁) 연세대 교수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세대 갈등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며 “문제는 국익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한미동맹 문제에 그런 갈등을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든 플레이크 미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지금의 한미동맹 관계가 50년 전과 같을 수 없다”며 “그러나 문제는 한국이 과거엔 다른 나라보다 국제적이었는데 현 정부와 젊은 세대는 국내적 시각에 매몰돼 미국을 보려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의 위협’을 대체할 ‘공동의 이익’ 찾자”=군사동맹의 근본은 ‘외부 위협에 대한 공통 인식’이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1년 ‘9·11테러’ 이후 한미동맹은 ‘공동의 위협’을 사실상 상실했다. 미국인에겐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테러조직에 넘길 수 있는 ‘악의 축’이다. 반면 한국인에겐 ‘부시 행정부의 대북 공격 가능성’은 ‘북한의 핵 위협’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됐다.

대부분의 한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유용성은 단지 전통적인 대북 억지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테러, 환경오염, 인권침해, 마약, 난민 유입 같은 다양한 위협에 대한 ‘포괄적 안보동맹’이 필요한 시대란 것이다.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동맹이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춰 추구하는 ‘공동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양국 국민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공동선언문 같은 것이 빠른 시일 내에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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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GPR는 新애치슨라인?▼

미국이 올해 2월 한국 정부에 설명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는 미국의 세계안보전략 속에서 흔들리는 한국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은 해외 미군기지를 4등급으로 분류하며 한국을 1순위 기지인 전력전개근거지(PPH·미 본토 영국 일본 등)가 아니라 그 아래 등급인 주요작전기지(MOB)에 포함시킬 뜻을 내비쳤다.

한국 국방부는 주한미군기지가 본토를 제외한 최고 등급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미국의 동북아 주축기지가 일본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의 정치·군사적 대치선을 당초 한국에서 일본으로 후퇴시킨 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의 GPR 계획을 일부에서 ‘신(新) 애치슨라인’으로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일명 애치슨라인)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5개월여 뒤 6·25전쟁이 발발했다.

50년 이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줄어든 국방예산과 늘어나는 소련의 위협 사이에서 전력 배치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이는 전 세계 테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고 GPR 계획을 세운 미국의 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47년 미 정부가 평가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16개 대상국가 중 13위에 그쳐 2004년 한국의 위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애치슨 선언 직전인 49년 미 합참의 비상전쟁계획(일명 오프태클)은 ‘동아시아의 안보를 주일미군기지 중심의 해·공군력으로 커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다시 일본을 PPH로 정했다. 또 유사시 북한에 대한 공중정밀폭격작전(작전계획 5026)도 마련 중이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영호(金暎浩) 교수는 “애치슨라인을 GPR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미국이 자국 전략에 따라 한국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고 우리가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은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51년 한미동맹 득실▼

51년간 지속된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과 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한국은 미군의 안보우산 아래에서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한국이 얻은 것을 엄밀하게 돈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만일 주한미군이 없었을 경우 현재의 한미연합 방어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이 투입했어야 할 비용을 따져보면 한국이 얻은 이득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장비 및 전쟁예비 비축물자는 약 240억달러(약 27조6000억원). 장비의 운영과 유지비로 연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씩 소요된다. 이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한미동맹을 체결한 1953년 이후 실제 투입액은 이보다 훨씬 많다. 현재 주한미군 3만7000명의 인건비 15억달러를 포함한 주둔비는 연간 30억달러 수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한미동맹으로 한국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2%에 해당하는 경제안정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8조5300억원에 해당한다.

미국 인사들은 “한국이 주한미군 덕분에 지난 50년간 국방비를 매년 수 조원씩 덜 쓴 결과, 자본의 집중적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한국전력이라는 한국형 대기업의 탄생이 가능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반면 주한미군의 각종 범죄 및 환경오염 등은 한미동맹에 뒤따른 그늘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측이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부담한 비용인 셈이다.

미국 역시 한미동맹을 통해 안보 전략상의 이득을 얻었다. 미국은 한반도에 병력을 주둔시킴으로써 냉전시대에 구소련과 중국을 견제할 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문정인 연세대 교수)으로 꼽히는 한미동맹의 가치는 군사 경제 외교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지금까지 동맹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한 한미 양국의 이득이 손실을 훨씬 상회했기 때문이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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