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과 주한미군 감축 등 주요 안보현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음에도 사회 일각에선 안보불감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정부가 안보위협을 공식적으로 언급할 경우 필요 이상의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10월 2차 북한 핵 위기 이후 정부가 내놓은 전망과 진단 중 일부가 지나치게 장밋빛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없다”=정부 차원의 낙관론은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주도하고 있다. 2002년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남한 공격용이 아니다. 북한에 유입된 달러화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은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정 장관은 남북관계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정 장관이 지난해 말 정례브리핑에서 황장엽(黃長燁) 북한 노동당 전 비서의 북한체제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을 때 당시 통일부 주변에선 “정 장관이 총대를 멘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외교통상부는 미국 뉴욕 타임스가 지난달 22일자 기사에서 북한이 이라크에 우라늄을 팔았다고 보도한 데 대해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확인 결과 리비아의 (우라늄) 구입처는 국제 암시장”이라는 해명자료를 돌렸다. 외교부는 이 때문에 마치 북한의 입장을 대신 해명한 것 같다는 정부 안팎의 비판에 직면했다.
▽한미간 인식차=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4일 청주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 핵은 한국에 위협이 안 된다는 당국자의 생각 때문에 한미간의 공동대처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간 이견이 빚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부 한국 관리들이 북핵 위협을 애써 축소하려 한다”며 “(그러나) 북핵 문제는 한국, 동북아, 전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외교부의 한 고위관리는 미국을 방문해 “7·1 경제개선조치 등 개혁개방을 위한 북한의 최근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인사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북한은 핵개발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처신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싸늘한 반응에 부닥쳤다는 후문이다.
▽정부 해명=통일부는 정 장관의 남북관계 낙관론이 업무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관계자는 “외교부와 통일부는 역할이 다를 수 있다”며 “외교부가 한미공조에 무게를 둔다면, 통일부는 북한을 다독이며 이끌어내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초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가 실제로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만, 안보불안 확산을 막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참여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외교부 통일부가 청와대에 ‘설명 방향을 정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청와대가 실무자의 견해와 달리 발언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부가 최근 안보 현실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정부의 낙관론 사례 | 정세현통일부 장관 | “2차 북한핵 위기는 1994년 1차위기 해결 때 걸렸던 1년7개월보다 빨리 끝날 것이다. 중국 역할이 크고, 한국도 주도하고 있고, 북한 경제사정도 더 나빠져서 그렇다.” (2003년 4월 11일 국회 남북관계특위에 출석해) |
“(북한이 나이지리아에 미사일 기술 수출을 제의해 나이지리아가 수락했다는 AP 보도에 대해) 나이지리아가 공개할 정도면 큰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초조감을 부르기 위한 북한의 외곽 때리기 전술이 아닌가 싶다. 진짜로 (수출) 하려면 은밀하게 했어야지.”(2004년 1월 29일 정례브리핑) | |
“북한에 유입된 달러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은 없다. 북한의 핵과 생화학 무기는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2002년 2월 2일 KBS1 TV 심야토론에서) | |
외교통상부 | “(‘북한이 리비아에 우라늄을 공급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국에 확인한 결과 리비아측은 우라늄을 핵 암시장에서 획득했다고 밝혔다고 한다.”(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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