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경기 가평군 북면 화악산 6·25전사자 유해 발굴현장에서도 이 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흡사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꽃다운 20세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오빠의 유해를 53년 만에 마주한 여동생(64)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빠, 이런 깊은 산 속에서 외롭게 누워 있었나요, 그렇게 날 예뻐해 줬는데….” 남동생들이 들고 온 형의 영정은 전사자 유해에서 발견된 비닐 속의 빛바랜 흑백사진과 너무나 닮았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전남 벌교 태생의 나영옥 상병. 8남매 중 둘째인 그는 고향 마을의 소문난 수재였다고 한다. 순천사범학교를 다녔고, 법원 등기소 서기로 근무하면서 고등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뒤 1951년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는 휴전 후 아들의 실종통지서를 받은 뒤 화병을 앓다가 57년 작고했고, 고향집을 지키던 어머니는 85년 별세하면서 “영옥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집을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국립현충원에는 17만8000여위(位)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참전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위의 호국용사들은 현충탑 내부에 위패만 모시고 있다. 실종자 대부분이 국토 어느 곳엔가 안식하지 못한 채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그들의 유해를 찾아 모시는 것이 뒤에 남은 이들의 도리다. 유해와 함께 돌아온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거저 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 준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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