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칼럼]‘신문 퇴장’의 국민 손익

  • 입력 2004년 6월 7일 18시 50분


코멘트
신문 안팎에 이렇게 말하는 논자들이 늘었다. “대통령에 대해 더 얘기하기 지겹다. 하지 말라는 건 더 하잖아.” 제언(提言) 피로감이랄까, 비판 허무주의랄까. 줄기찬 역공에 비판이 패색을 보이는 것도 같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결국에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나, 다수 국민을 위해서나 다행일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주한외교단 270명 앞에서도, 어제 국회 연설에서도 신문에 대한 불신과 비판에 대한 반감을 어김없이 나타냈다. 지난 금요일엔 신문을 둘러싸고 다른 일도 있었다. ‘언론개혁 국민행동’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그 시간에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4개 신문을 언론중재에 회부했다.

▼‘알 권리와 언론자유’ 누가 막나▼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좌향좌로는 경제위기 못 넘긴다’는 사설의 일부 내용이 일방적 주장이라고 문제삼았다. 그 적부(適否)는 따로 따질 일이고 반론보도 요구도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재경부 실무간부들은 이런 말을 했다. “위에서 너무 강하게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 “건건이 그러지 말자고 우리도 수없이 얘기한다(청와대 시키는 대로 하느냐는 질문에).”

적어도 자유민주국가의 지도자와 정부라면 언론의 감시와 평가, 제언과 비판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국민과 나라에, 그리고 권력 자체에도 불행을 안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론은 빛을 잃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언론개혁’도 주문했다. 무엇을 개혁이라고 볼까. ‘언론개혁 국민행동’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언론을 바꾸겠다”고 했다.

국민의 알 권리 신장이 개혁의 핵심이라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취재 제한부터 대폭 풀어야 한다. 정부가 세금 써가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훤하게 알 권리가 국민에겐 있다. 언론은 이에 봉사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 대해서만 투명성을 요구할 일이 아니다.

오보가 문제라면 신문이 오보를 줄일 수 있도록 취재의 자유를 더 주어야 한다. 비판을 참을 수 없다면 어떤 점이 주로 문제되는지 점검해 보고 내부의 변화와 개혁을 선행하는 게 순서다.

언론자유에는 당연히 언론사 소유의 자유도 포함된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소유 주체가 확실한 언론과 그렇지 못한 매체 가운데 어느 쪽이 권력에 더 약한지는 역사를 통해서나 현실을 통해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끊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하는 권언(權言)유착, 정언(政言)유착을 소유권이 안정된 언론이 더 하는지, 그렇지 못한 매체가 더 하는지도 분명해 보인다.

언론을 바꾸는 게 염원이라면 권력에 대한 ‘충견(忠犬)매체’부터 바꾸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국민과 나라를 생각할 때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부탁한다.

▼국회에 주문한 ‘언론개혁’ 속내는▼

권력과 주변세력들은 집요하게 몇 개 신문을 공격해 왔다. 군소 신문들도 이에 동참한다. 그런데 왜 시장점유율엔 큰 변화가 없을까. 지도자나 정부의 힘이 국민에게서 나오듯이 신문의 힘도 국민인 독자에게서 나온다. 경품 제공 등 판촉문제를 제기하지만, 공정거래 질서는 지켜져야 하지만, 과연 신문시장의 이런 얼룩을 국가 최우선 개혁과제라고 할 만한가. 일본에선 3개 신문의 점유율이 80%에 이르러도 이를 개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굳이 시비를 걸려면 일부 신문보다 훨씬 심하게 국민 공유의 전파를 독과점하고 있는 방송부터 건드릴 일이다. 방송은 우선이 아니라면 ‘언론개혁’의 속내가 딴 데 있음이다.

어느 여당 의원은 TV에 나와 “3개 신문은 논조가 똑같이 보수잖아. 그러니까”라며 소유지분과 시장점유율을 법으로 낮춰야 한다고 ‘실언’했다. 한 원로는 말한다. “반대세력 기를 꺾어 이런 체제로 10년, 20년 가겠다는 뜻 아니겠어요? 신문들도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많이 약화됐잖아요?”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