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국회연설]성장잠재력 10년째 떨어지는데

  • 입력 2004년 6월 7일 18시 50분


경제 전문가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7일 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또다시 “과장된 위기론이야말로 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킬 뿐 아니라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대체로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현재 한국경제가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는 언론 및 학계의 우려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잇따라 ‘음모론’까지 제기하자 “아직도 ‘약자의 방어논리’에만 익숙한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도 없던 신권위주의”라는 비판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부질없는 ‘위기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한국경제가 처한 문제점에 대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이 제기한 ‘위기 과장론’에 대한 학계 전문가들의 견해.

▽고려대 이필상(李弼商·경영학) 교수=달러가 없어 외국 빚을 못 갚는 외환위기나, 돈이 안 돌아 금융시장이 무너지는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침체돼 성장동력이 갈수록 꺼지고 있다. 이런 상황도 분명 위기이며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외환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위기론’을 음모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배 밑바닥에 물이 차면 일단 퍼낸 다음 뚫린 곳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 표학길(表鶴吉·경제학) 교수=신권위주의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군사정부 시절에도 학계의 경제위기론을 강제로 묵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위기를 위기라고 적시하지 못하게 한다. 일부에서는 위기론의 정의가 다르다고 하는데 지속적인 불황이 더욱 심화되는 게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경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도 문제다.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놓고 투자목표를 정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보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이다.

▽상명대 함시창(咸時昌·경제학·경실련 산하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교수=‘시장의 실패’를 바로 잡는 규제는 필요하다. 대기업들도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반대하기 위해 경제위기론을 주장하면 안 된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응 방법이 더 큰 문제다. 지금은 수치상의 성적표를 갖고 위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걱정하는 것이다. 재계 전문가그룹 언론이 경고하고 대통령과 정부는 수용하려 들지 않는 것이 현 상황이다. 정부는 “경제는 문제없다”라고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1997년 외환위기는 ‘급성’ 경제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장잠재력이 10년째 떨어지고 있는 ‘만성’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서 국가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암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듯이 경제가 외환위기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만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는 지금 너무 일찍 노화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경제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이름 모를 난치병이 우리 경제의 마지막 숨을 끊어 놓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과제다.

▽중앙대 박찬희(朴贊熹·경영학) 교수=지금 상황에서 경제가 위기니 아니니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점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경제의 ‘현재 실력’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위기론과 관련해 자꾸 일부 언론을 들먹이는 것은 대통령이 아직도 ‘약자의 방어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지지계층을 결집시켜 한순간은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 전체로는 손해를 볼 수 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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