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가공개 반대'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 아파트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라면서 "당정협의, 공청회를 통해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일주일전인 3일 의원총회에서 "분양 원가 공개 문제는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에 강력히 추진하겠다"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말이다.
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후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대통령 말씀'에 따라 분양원가 공개를 백지화하자니 지지자들로부터 '소신 없이 말을 바꿨다'는 비난을 떠안아야 한다. 그렇다고 약속한 대로 분양원가 공개를 밀어 붙이자니 당-청간의 불협화음을 넘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다는 부담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 초선의원은 "이제는 '오락가락'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지쳤다"며 "분명한 정책 방향을 밝히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당내 혼선은 '개혁 강박증'이 만들어낸 해프닝이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아파트 분양원가에 대한 전면적인 공개는 정부가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열린우리당이 선거 과정에서 실행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고 '개혁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약으로 내건 것 자체가 화근이었다는 설명이다.
건설교통부가 1일 당정협의에서 내놓은 25.7평이하 주공아파트에 대한 '원가 연동제'는 사실상 분양원가가 공개되는 효과가 있고, 아파트 가격 결정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강력한 조치로서 나름대로 아파트 가격 안정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 효과에 대한 이해 없이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하면 '개혁적'이고, 반대하면 '반개혁적'이라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정책의 실효성과 실현 가능성은 뒷전에 밀렸다. 결국 분양원가 공개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논리만 남았고 당 지도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스스로 좁힌 결과를 초래했다.
다른 초선의원은 "분양원가 공개 문제뿐 아니라 이라크 추가 파병, 언론 개혁 등 당 전반이 개혁 강박증에 빠져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혼선에 대해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도 모르고 공약을 내건 열린우리당이나 자신이 속한 당을 비난하는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암담하다"고 꼬집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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