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행정수도이전 득실 저울질

  • 입력 2004년 6월 10일 18시 52분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수도 자체를 옮기는 천도(遷都) 차원으로 논란이 확대되면서 여야 지도부가 대응책 마련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장 대여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김안제(金安濟)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이 천도론을 시인함에 따라 공세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판단에서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10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신행정수도 이전이라고 해서 (지난해) 특별법이 통과됐는데,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국가 핵심기관들이 옮겨가는 천도 개념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공청회나 여론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도 “현 정부가 지능적으로 국민을 속인 데 대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국민들의 생각을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한나라당은 조만간 이한구(李漢久) 정책개발특위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수도이전문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인 대응 방향에 대해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신행정수도의 후보지인 충청지역의 민심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 딜레마 때문이다.

충청표를 의식해 지난해 국회에서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찬성표를 던진 ‘원죄(原罪)’도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 지도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천도론 공방이 자칫 가닥을 잡지 못한 채 장기화될 경우 당 내분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에선 이미 기존 당론 채택과정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국민투표 절차를 통해 천도론을 정면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확산되고 있다. 당 소속의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과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는 ‘행정수도 이전 불가론’을 펴며 당 지도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천도론은 과거 왕조시대 개념일 뿐”이라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서영교(徐瑛敎)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난 16대 국회에서 절대과반을 가진 한나라당이 찬성해 통과된 법안을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론분열을 조장할 뿐이다”고 비판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이날 기자에게 “현재 진행 중인 행정수도 이전은 서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처럼 행정수도와 경제수도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라며 “정부가 추진 중인 계획엔 경제부처 이전 계획이 없어 천도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행정부 이외에 입법부 사법부까지 옮기는 문제에 대해 이 당직자는 “전문기관의 연구 결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입법부 사법부 이전은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면 된다”고 덧붙였다.

당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장인 박병석(朴炳錫) 의원측은 일각의 국민투표 실시 주장에 대해 “국회 건설교통위 법사위에서 1년 이상 논의를 했고 정부 차원에서 수십차례 세미나를 여는 등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며 “행정수도를 옮긴 외국에서도 국민투표를 부친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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