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태복/‘사회안전망’이 흔들린다

  • 입력 2004년 6월 17일 18시 43분


보건복지부의 6·3개선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연체자들에 대한 압류조치를 중지하고 납부예외자를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6·3대책은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싼 광범위한 불만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가입자의 절반이 납부예외자가 된다면 꼬박꼬박 연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국민불신만 쌓이는 4대 보험▼

안티국민연금운동으로까지 번진 이번 사태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무지나 무책임한 선동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가입자들의 불만과 불신은 위험수위에 와 있다. 당국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국민의 경제상황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기왕의 타성적 조치를 취한 데에서 분노가 촉발된 것이다. 국민은 이구동성으로 생활이 힘들다고 말한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먼 훗날을 위해 장기투자를 할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이런 실정에 언제 얼마의 연금을 받을지도 모르는 가입자들에게 연체책임을 물려 차압까지 했으니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국민의 불만은 국민연금에만 국한된 것일까. 건강보험은 어떤가.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라고 발표했지만 그 ‘흑자’에는 천문학적인 정부재정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험료는 오르고, 부과기준은 자동차, 집 등 시대착오적인 데에 머물고 있으며, 보장성은 취약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건강보험 얘기만 나오면 거품을 문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선 중소기업주들의 불만이 가장 크다. 경기침체로 사업의욕을 잃은 데다 주5일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부담이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실업자, 그중에서도 장기실업자들은 고용보험제도에 대해 그것이 어느 나라 제도인가 묻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한국경제와 한국사회가 외형적 수치와 무관하게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불균형구조가 심화되고, 중산층 붕괴와 실업자 및 신빈곤층의 증가로 사회갈등과 불만이 격화돼 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4대 보험의 사각지대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실업자들이 넘쳐나지만 고용보험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미 곳곳에 구멍이 난 안전망을 믿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지금 사회안전망을 합리적으로 정비해내지 못하면 한국의 사회보장체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발전된 사회보장체계를 가졌던 남미 국가들의 사회안전망 붕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 사태를 단순히 국민연금만의 문제로 국한하거나 미봉책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2005년도에 공무원 군인 사립교원연금에만 8000억원 이상의 국민세금이 들어가야 한다. 반면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총 1000만명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사회안전망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획기적인 개선책을 종합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곳곳에 이미 구멍… 재정비 시급▼

이를 위해 4대 보험제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를 시급히 가동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는 지지부진한 4대 보험의 통일적인 관리체계 수립, 사각지대 해소, 보험료 부과기준 변경, 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연계, 각종 복지제도의 정비와 재정대책 수립, 서비스 조직으로의 전환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4대 보험이 대한민국 공동체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고통과 불행을 함께 나눠지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장단기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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