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염에 걸리기 전까진 위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학교 때 생물 공부를 잘못했던 탔이지만 그저 뱃속에 있겠거니 했다. 그놈이 명치끝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나서야 위가 그 자리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아무 소리 없이 제 기능을 해왔다는 걸 알았다. 그 존재와 의미를 절실히 깨달을 때는 이미 고장이 났다는 걸 뜻한다. 몸이든 물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정치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가 좋은 정치라고 한다면 ‘별놈의 보수’ 가운데 시대착오적 보수로 분류될 거다. 하지만 수도까지 옮겨야 한다는 요란한 정부를 만나니 알겠다.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걸. ▼의욕과잉 정부, 허리 휘는 국민▼ 좌파라 하지 말고 개혁파라 불러 달라는 노무현 정부를 선택했을 때부터 변화와 개혁은 예고돼 있었다. 좌파든 개혁파든 중간보다 왼쪽에 선 정부는 국민 삶에 개입을 많이 하는 게 특징이다. 출범 때보다 4실 16국 70과가 늘어나 49실 396국 1332과로 확대된 정부조직이 이를 입증한다. 작은 정부 아닌 효율적 정부를 추구한다는 정부 이념대로 일만 잘한다면 비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쓰레기 만두’가 터진 건 정부가 제 할일을 안해서이지 관련 조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쓰레기 만두소에 버젓이 적합판정을 내려놓고도 책임지는 기관장 하나 없는 현실이다. 대신 대통령 직속 국가식품안전위원회를 신설하겠다니 그들 월급 주느라 피 같은 세금을 더 내야 할 판이다. 내년도 1인당 조세 부담이 올해보다 14만원이나 늘어나는 데도 말이다.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에 58조원, 수도 이전에 11조원, 농어촌특별대책에 119조원 등등으로 10∼20년간 230조원의 재정부담이 예상된다는데 세금 생각만 해도 허리가 휘어진다. 또 한쪽에선 공군이 무슨 사업을 잘못해 1320억원의 국고 손실이 났다니 이렇게 새는 돈이 얼만지 물어내라고 멱살을 잡고 싶다. 이렇게 효율적이지 못한 정부가 시장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경제에도 심판 아닌 선수처럼 뛰고 있다. 기업투자부터 비정규직, 신용불량까지 구석구석 정부가 팔을 걷고 나와 국민 고민을 덜어준다. 개인적 문제라도 소리 높여 사회 탓을 하면 국가가 나서 총괄기구를 만들고 수없이 회의한 뒤 로드맵에 따라 해결해 줄 터이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우파 정부보다 개혁적 정부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부 개입의 타이밍과 해법이다. 어떤 선택이냐에 따라 돈이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개인, 기업의 결정과 국가의 그건 다르다. 공직자의 목과 별로 상관없는 데다 그 영향이 불특정 다수에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까닭에 잘되든 잘못되든 ‘지난 일’로 낙착된다. 시장결함이 정부결함보다 낫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무능하고 무모한 정부의 개입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위험하다. 걸출한 리더가 나서지 않는한 마당발 정부가 효율적으로 판명된 사례는 많지 않다. 세계적으로 작은 정부는 큰 정부보다 전반적 생활수준이 높고 실업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크다고 정평 났던 유럽의 정부조차 세금과 정부 지출을 줄이고 시장으로 돌아서는 중이다. 빈곤층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정부가 덩치를 키운다고 풀릴 일도 아니다. 교육에 획기적으로 투자해 인간자본의 경쟁력을 높이고 세금을 줄이는 정책 등으로 접근하는 게 생산적이라는 지적이다. ▼먹고살게 해주는 게 진짜 개혁▼ 바야흐로 대통령은 큰 정부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이제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의 새 명패는 ‘개혁’이며 수도 이전은 그중에서도 핵심이 됐다. 그 개혁이 시장친화적이고 실용주의적이면 국민 된 입장에서 황송하지만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반대하는 쪽만 개혁을 막기 위한 저항과 집단이기주의로 찍힐 뿐이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뜻하지 않게 냉전을 종식시킨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러시아에선 지탄 대상이다. 경제를 결딴 냈기 때문이다. 어떤 개혁이든 지금은 먹고살게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립서비스만 해놓고 실제론 살기 어렵게 만드는 쪽이야말로 개혁저항세력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