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의 근거법이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닥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특별법을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 등을 담은 ‘실체법’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러한 권한 구현의 방법과 절차만을 규정한 ‘절차법’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 헌법학자들은 이와는 별도로 특별법이 실체적 절차적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행정수도 이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먼저 “특별법이 절차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 정책이 사실상 ‘천도(遷都)’라는 점을 강조한다. 원래 특별법의 취지는 일부 행정부서를 옮겨서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는데, 현재는 행정부뿐 아니라 국회와 대법원까지 이전을 추진하는 사실상의 수도 이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즉 ‘건설법’은 수도이전법이라는 모법(母法)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한 절차와 방법만 규정한 특별법에 불과해 이를 근거로 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법체계상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형벌의 내용과 형량을 정한 형법(실체법)이 없는 상태에서 형사소송법(절차법)만 가지고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허영(許營·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금 시행되는 특별법으로 사실상의 수도 이전을 하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을 근본으로 한 특별법의 취지나 위임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대 헌법학 교수인 C교수도 특별법이 절차법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대해 “근거가 있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체법이다”=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별법은 6조에 이전 대상 기관과 이전 방법 및 시기 등을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8조에서는 이전 예정 지역도 규정하는 등 실체법적 규정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에 다양한 권한을 위임해 이전 예정 지역에 대해 기초조사를 할 수 있게 한다든지, 이전 지역에 대한 건축허가 제한이나 토지거래 허가지역을 지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모두 실질적인 권한을 규정한 것이어서 실체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 연구관 출신인 황도수(黃道洙) 변호사는 “추진위에 각종 조사나 규제 권한을 위임하는 내용을 규정한 것만으로도 실체법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절차법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실체적 절차적 합리성 결여”=원로 헌법학자인 최대권(崔大權) 서울대 명예교수는 “수도 이전 문제는 국회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수도의 위치는 주권이나 국민 영토와 같이 헌법에 명문 규정이 있느냐에 상관없이 헌법의 핵심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 이전은 국회가 법을 만들어 추진할 일이 아니라, 헌법개정이나 그에 준하는 절차, 예컨대 국민투표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또 “특별법은 선거에서 충청도 표를 의식한 정당간의 정략적 합의에 따라 공청회 한번 없이 제정되었으므로 절차적 합리성도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주요내용 및 제정과정▼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이전 대상 기관과 신행정수도의 규모 등 건설 기본계획, 이전 예정 지역의 지정과 관리, 추진 기구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의 주요 내용=특별법은 먼저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국가의 균형발전전략 및 주요 헌법 기관과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계획 등을 토대로 △신행정수도 건설 기본 계획을 수립하여 △대통령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또 △이전 예정 지역과 주변 지역은 충청권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추진위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지정하고 고시하도록 했다.
법은 또 추진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고 국무총리와 민간인을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하도록 정하고 있다. 추진위 산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을 두고 대통령비서실 소속 정무직 공무원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을 단장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추진위는 난개발과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 개발 행위 및 건축허가 제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예정 지역 및 주변 지역 사이의 광역시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신행정수도 광역도시계획’도 수립하도록 했다.
▽제정 과정=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2002년 대선 당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뒤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현실화됐다. 노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를 1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했으며 이후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설치돼 입지와 선정 기준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특별법이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 측근비리 문제에 전념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 통과와 열린우리당이 주장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을 맞바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별법 통과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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