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의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金桂冠) 외무성 부상은 26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서두우(首都)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1차 실무그룹회의 때 북한 대표단이 출입국 때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였던 것과 사뭇 대조되는 유연한 태도이다.
북한은 또 그동안 '입버릇'처럼 계속하던 미국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이번엔 일절 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런 변화엔 "절대 판을 깨선 안 된다"는 한국 정부의 집요한 설득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표단은 개막식 전인 22일 오전 북한과의 양자 접촉에서 "이번 회담에서 미국도 구체안을 제시한다. 북한이 이 안을 '마음에 안 든다'고 차버리면 6자회담 자체가 깨진다"고 적극 설득했다고 한 회담 관계자가 전했다.
특히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 요구는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것"이란 식의 대미 공세는 회담만 공전시키고 △영변의 5MW 실험용 원자로를 '평화용'이라며 동결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는 것.
북한 대표단은 한국 측의 이런 설명과 설득을 주의 깊게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계관 부상은 회담 기간 중에 한국 수석대표인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의 손을 잡고 걷는 등 강도 높은 친밀감을 보였다고 한국측 관계자들은 말했다.
미국의 유연한 자세도 북한의 이런 신축적 태도에 영향을 줬다. 미국 대표단은 자신들의 구체안에 대한 '한글 번역본'까지 만들어 북측에 전달하는 '성의'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의 막판 최대 쟁점은 '차기(4차) 회담 개최 일정'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무조건 빨리 하자'는 쪽이었다. 양국은 "6자회담의 탄력을 이어가기 위해 비록 여름 휴가철이지만 실무그룹회의는 7월 중에, 4차 본회담은 8월 중에 열자"고 주장했다. 미국은 구체적 회담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11월 대선에 임박해 회담을 열기보다는 '조기 개최'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8월안'에 가장 부정적인 국가는 의장국인 중국이었다.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 확보가 이미 예정된 다른 행사들 때문에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 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협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10월 개최'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수혁 차관보가 나서 "6자회담도 기본적으로 '정치회담'인데, 미국 대선을 몇 주 앞두고 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북측을 설득해 '9월말 이전'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고문관' 역할을 한 것은 러시아. 러시아는 "북 핵 문제 해결이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차기 회담은 올해 안에만 열면 된다"고 여유를 부려, 한국 대표단의 속을 태웠다는 것.
○…의장국인 중국이 이번 회담의 성공을 위해 세운 전략은 3가지. 첫째는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CVID란 용어를 미국이 안 쓰도록 하는 것. 둘째는 북한이 제시할 '핵 동결 대 보상안'에 대해 참가국의 진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 마지막으로 회담 진전의 최대 장애물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문제가 가급적 덜 거론되게 하는 것.
중국은 이 3대 과제를 사전 양자 접촉을 통해 참가국들에게 당부했고, HEU 문제를 제외하곤 사실상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단은 회담 막판 중국과의 양자 접촉에서 "HEU 문제는 북-미 간에 타협점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의장국인 중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 역할이 미흡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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