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시스템 있나]<上>컨트롤타워 왜 혼선빚나

  • 입력 2004년 6월 28일 18시 51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임무이다. 그러나 가나무역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과연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의 외교안보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2항)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것과 같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통상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외교안보라인은 이를 위해 많은 예산을 사용한다.

그러나 김씨 피살사건은 국민의 안위에 관한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제기한다.

▽안보는 말만으로 되지 않는다=참여정부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킨다’는 ‘자주국방론’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수평적 한미관계’를 강조하고 과거 ‘대미 굴욕 외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런 외교안보 방향은 당연히 ‘사령탑’격인 NSC가 주도했다.

그러나 이번 김씨 사건에서 NSC는 주목할 만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책임 공방에서 NSC는 쏙 빠져 있는데 앞으로 NSC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종인(金鍾仁) 의원은 “‘힘센 NSC’는 미국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가 전략을 짜는 나라에나 어울린다”며 “우리 NSC의 핵심 포스트는 외교안보 전문가가 아닌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차지하고 있어 북한 문제에만 너무 치중한다는 인상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SC측은 “외교안보팀의 ‘두뇌’ 역할을 하는 NSC로선 1차 정보의 부족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NSC는 국가정보원이 올린 정보를 토대로 외교부 국방부 같은 외교안보 부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냉랭한 한미 분위기에서 한미 정보 교류가 제대로 되겠느냐”며 “반대로 국정원 내부에선 ‘NSC 내부의 정보 왜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따로 노는 외교안보라인=지난해 10월 말 NSC 고위관계자가 ‘추가 파병 규모’에 대해 “2000∼3000명 선”이라고 선을 긋자, 다음날 당시 더 큰 규모의 파병을 주장했던 윤영관(尹永寬) 외교부 장관은 “(그것은) 개인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000명 파병’에 사인해 결국 ‘NSC의 완승’으로 끝났다.

국정원 일각에선 대테러방지법안의 입법이 좌절된 것에 대해서도 “‘인권 침해’를 내세운 시민단체의 반대도 있지만 법 제정에 소극적인 NSC의 의견도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대량살상무기(WMD)가 테러조직 등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WMD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해 외교부와 국방부의 실무진은 “세계적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가입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와 NSC는 PSI가 사실상 북한을 겨냥한 것인 만큼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며 가입에 부정적이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에 대해 NSC 이종석(李鍾奭) 사무차장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지만, 한승주(韓昇洲) 주미대사는 “미국의 소맷자락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감축 시기나 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보 전문가는 “안보의 최대 적은 ‘밖의 위협’이 아니라 적전 분열”이라며 “외교안보팀이 한국의 위협과 안보 방안에 대한 공동 인식을 갖는 것이 외교안보시스템 점검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논란의 核’ 이종석차장▼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크’하고 있는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한 사람에게 권한을 몰아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 대해 예외를 인정한 듯이 보인다.

노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 차장을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앞자리에 앉도록 배려한 데 이어,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이 겸임해온 NSC 처장 자리에 이 차장을 내정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법까지 개정키로 한 것은 이 차장에 대한 신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차장이 이처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대통령의 철학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업무처리도 빈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중평이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말 언론계 인사들에게 “이 차장이 올린 보고서가 최고”라고 평가한 바 있다.

외교통상부 국방부 통일부 국가정보원은 밤사이 입수된 각종 정보를 매일 새벽 청와대에 보고한다. NSC 정보관리실은 이를 취합한 뒤 ‘다각도 분석’을 곁들여 위에 보고하는데 이 차장은 이런 분석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장에 대한 힘의 쏠림 현상이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NSC-외교안보 당국간의 의견대립 사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외교부 국방부
이라크 전투병파병 규모(2003년10월 27∼28일)고위관계자 “2000∼3000명이 합리적이다. (이 숫자는) 사견이지만 NSC 내부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윤영관 외교부 장관, “파병규모는 관계부처가 논의한 바 없다. 개인 아이디어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3000명으로 결정)
용산기지이전 협상(2003년 말)“미국을 잘 이해한다는 외교부 북미국이 미국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협상하고 있다.”외교부 북미국,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종 협상결과물을 놓고 판단하라.”
대통령폄훼 발언(2003년 말)“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외교부 실무 과장 “노무현 대통령과 NSC 일부는 탈레반이다.”
주한미군감축국방부 소외론(2004년 6월)“국방부 담당자가 인사 이동한 직후여서 그랬을 뿐이며, 앞으로 바로잡겠다.”국방부 실무자, “주한미군 감축 문제의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협상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현안브리핑을 외교부 기자실에서 하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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