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단기부양책 경계론은 이 위원장만의 지론은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7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시간에 쫓겨 단기부양책을 쓰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3.1%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 무리한 단기부양의 유혹에 빠져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아우성이 빗발치는데도 253개에 이르는 화려한 ‘로드맵’을 믿어달라는 정부의 ‘뚝심’도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하나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에는 ‘일부 집단이 단기부양책을 촉구했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다. 구체적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을 비판하는 경제계나 언론, 상당수 학자들을 겨냥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위기론’을 제시하며 정부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던 전문가나 언론인 가운데 단기부양책 마련을 촉구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신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는 반(反)기업 정서를 차단하고, 규제를 혁파하며, 노사관계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를 요구했다. 또 수출과 내수의 단절을 해소하고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려야 하며 기업들에 비전을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전후 사정이 이런데도 “단기부양책은 안 쓰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물 달라는데 “밥 없다”고 고집부리는 격이다.
더구나 정부는 알게 모르게 단기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다. 재정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고 2조원 안팎의 추가경정예산을 조성하겠다는 게 과연 장기주의 정책인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단기부양책 경계론이 혹시 실력 부족에 따른 변명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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