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2주년… 추모식에 유족등 150명 참석

  • 입력 2004년 6월 29일 18시 34분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서해교전 2주기 추모식에서 이희완 대위(28·당시 중위, 왼쪽) 등 교전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이 전적비에 헌화한 뒤 경례를 하고 있다.-평택=박영대기자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서해교전 2주기 추모식에서 이희완 대위(28·당시 중위, 왼쪽) 등 교전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이 전적비에 헌화한 뒤 경례를 하고 있다.-평택=박영대기자
29일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우다 6명의 꽃다운 젊은이가 서해에서 산화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서해교전 직후 전국적인 추모 열기가 타 올랐고 국민은 이들을 영웅으로 불렀다. 교과서에 실어 이들을 두고두고 기억하자고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세상은 이들을 잊었다.

2년이 지난 이날 유가족들은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충무동산에 설치된 서해교전 전적비 앞에 모여 전사자 2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전사자들과 함께 교전을 치른 장병과 문정일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역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해군 장병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1주기 때 모습을 드러냈던 정치권 인사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추모사가 이어지는 동안 입술을 깨물던 유족들은 헌화가 시작되자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부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고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씨(57)는 전적비 뒤에 새겨진 아들의 청동 얼굴 부조를 어루만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들에게 보내는 애틋한 사연의 편지를 읽었다.

“도현아, 도현아, 불러도 대답 없는 도현아. …엄마 아버지는 너를 기리며 너의 짧은 인생 못 다한 꿈을 위로하며 가끔 세상을 원망하며 마음을 달랜다. …지난날 도현이가 남겨놓은 모든 것들이 엄마 아버지에겐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유물이 되어 우리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너의 애달픈 삶의 마감을 기리고자 한다. 부자간에 말 못한 사정은 꿈에서라도 만나 얘기하며 네가 선물한 피맺힌 술로 축배라도 들어보자….”

유족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자식과 남편들이 너무 쉽게 국민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이 가슴 아프고 원통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 조천형 중사의 아버지 조상근씨(61)는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 누구인지 새까맣게 잊고 있다. 더 말해 봐야 뭐하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유족은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는 허용하면서 북한과 싸우다 숨진 우리 자식들을 위한 문화행사는 못하게 한다”고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국민의 대북 인식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심정을 토로했다. 황씨는 “초등학생까지 북한은 좋고 미국은 나쁘다고 하는 마당인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말했다.

교전 때 부상한 이희완 대위는 “나라는 군인만이 아니고 전 국민이 지키는 것이다. 먼저 간 전우들을 가슴속에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택=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부상 18명 요즘 어떻게▼

2년 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25분간의 교전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고속정 참수리 357호 부상자 18명. 이들은 부상하지 않은 나머지 동료 3명과 함께 ‘서해교전 전우회’를 만들어 그날의 자부심과 아픔을 되새기고 있다.

이희완 대위(28·당시 중위)는 정장(艇長)인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사망으로 참수리호의 전열이 흐트러지자 곧바로 전투 지휘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그는 두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왼쪽 다리에는 뼈 이식수술을 받고, 오른쪽 다리엔 의족을 해야 했다. 이 대위는 피땀 어린 재활을 거쳐 현재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당시 고속정 갑판장으로 머리와 얼굴에 파편상 및 찰과상을 입었던 이해영 상사는 해군 2함대 예비군 갑판 교육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해교전 전우회의 회장인 그는 지난해 회원들에게 ‘부상이나 정신적 고통을 떨쳐버리자’며 국방일보가 주최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토록 격려하기도 했다.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의 포탄 공격으로 왼손을 부상한 뒤 오른손만으로 응사하는 투혼을 보였던 갑판 수병 권기형 상병은 의가사제대해 대학에 복학했다. 포탄 파편에 머리와 왼쪽 어깨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던 조현진 상병도 수술을 받고 역시 의가사제대한 뒤 대학에 복학한 상태.

곽진성 하사는 만기 전역 후 지난해 8월 결혼했다. 현재는 모 대기업 계열사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밖에 전역하지 않은 장병 대부분은 부상 및 참수리 357호 침몰 등의 이유로 보직을 지상근무로 옮겼다.

당시 참수리 357호 멤버 중 현재도 배를 타는 사람은 교전 당시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임근수 하사뿐이다. 그는 해군 수송함의 디젤엔진 담당 부사관으로 근무 중이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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