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이렇게 말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 권한과 추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 이 신임 총리는 ‘정책’과 ‘정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각을 통할하고 정책을 조정하는 고유 업무이외에 여권 내 정무기능 부재에 따른 ‘별도의 역할’까지 부여된 셈이다.
이 신임 총리는 이날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도 “청와대 정무기능이 약해져 총리실에서 (청와대) 정무기능을 커버해야 하는 역할이 시급히 주어졌다”고 정무분야까지 직접 손을 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인준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기대하는 것은 국정과제를 안정되게 잘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이에 역점을 둬야 한다”며 “야당에는 정책 설명을 통해 이해를 구하고, 여당과는 당-정 협의를 통해 조율하겠다. 정무 기능 강화는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여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난 당-정-청간 ‘컨트롤 타워’ 부재 비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여권은 실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비처)에 대한 기소권 부여 여부,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 등과 관련해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보여 왔다. 때문에 최종조율자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이 신임 총리는 부패청산과 정부혁신이라는 개혁과제를 추진하면서 한편으론 내각의 정책조율은 물론 국회와의 대화창구라는 다중적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하지만 당-정간 조율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신임 총리는 물론 당쪽 파트너인 신기남(辛基南) 의장이나 천정배 원내대표 역시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 사람이 동년배인데다 천 원내대표는 이 신임 총리와 원내대표 경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었다. 천 원내대표의 개혁지향성과 이 신임 총리의 실용주의적 성향도 사안에 따라선 대립과 경쟁 관계로 번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신임 총리에겐 많은 권한이 부여된 만큼 힘도 실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책임총리제’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내치(內治)는 이 신임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외교 안보 국방 분야를 맡는 역할분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역시 이 신임 총리에게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이 신임 총리가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몇몇 정책현안에 대해 강한 소신을 밝혀온 만큼 단순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도 이 신임 총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가 5선의 중진의원으로서 누구보다 국회사정, 특히 야당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이날 표결 결과 한나라당 의원 중 상당수가 찬성표를 던진 것도 노 대통령의 일방적인 개혁드라이브에 대해 이 신임 총리가 합리적 조정을 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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