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만세 부른 지 80여일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활한 지도 50여일 지났다. 이들은 정치적 올인에는 성공해 권력의 안방을 차지하는 꿈을 이뤘다. 한나라당도 꽤 큰 옆방 하나는 얻어냈다.
▼헛바쁜 정부와 국회의원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권은 살판났지만 대다수 국민은 죽을 맛이다.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 조짐이니, 남미형 침몰 국면이니 해도 현장의 고통을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다.
이런 판에 여야당은 국회를 열고도 한 달여를 거실 소파는 내 거다, TV는 내 거다 하고 다투는 데 썼다. 감투싸움에 구슬땀을 흘렸다. 가게는 개업하면 이웃에 떡 한쪽이라도 돌리지만, 저 국회는 자기네 먹을 떡 가지고 치고받느라 국민에게 줄 떡은 떡쌀도 못 담근 형국이다.
그간에 한 일이 없지는 않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이다, 실용이다 시비하느라 바빴다. 민생은 자포자기에 빠져드는데 무엇이 급한지 언론개혁 사법개혁을 최우선이라고 하고, 남북국회회담을 초당적 첫 사업으로 삼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는 선진화를 구호로만 되뇌기 바빴다.
개혁하려거든 정당과 국회의 국민에 대한 서비스 생산성부터 개혁하라. 공무원들 불러 속 들여다보이는 호통만 치지 말고, 경제 실상 직접 살피고 제 손으로 규제개혁 입법 좀 하라. 부동산 규제 재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경기 못 띄운다고 다그치나.
초당적 국회외교하려거든 한미관계 끝장나지 않도록 대미외교부터 새출발하라. 국익이 뭔지, 세계질서가 어떤지 어림짐작이라도 한다면 제발 운동권식으로 나라 안보와 경제의 기둥뿌리는 흔들지 말라. 한나라당은 선진화의 길이 뭔지 약도라도 그려내라.
헛바쁘기는 정부도 난형난제다. 수도(首都) 이전에 명운을 건다니, 정말 목숨 걸 일이 그것이던가. 대통령이 두 달 동안 수도(修道)했다면 뭔가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나.
말끝마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학습이다 하지만, 바라보는 국민은 이미 지쳤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아직 용비어천가 떠돌지만, 다른 인터넷 글방도 좀 들여다보면 젊은 민심마저 어떻게 돌아섰는지 알 터이다.
희망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내 임기 중엔 경제 걱정 말라는 말만 믿고 신바람 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나흘 전에도 대통령은 외국 기업인들 불러 “한국 정부를 믿고 투자해 달라”고 했지만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론을 음모라고 몰아세워서 바뀐 게 뭐 있나. 대통령이 위기론에 치를 떠니까, 위기대응 정책에 밤잠 설쳐도 모자랄 재정경제부 엘리트들이 위기를 걱정하는 신문들을 무더기로 걸어 시비 가린답시고 언론중재위원회 드나들기에 바빴다. 달라진 정부 모습이 이런 것일 순 없다.
고임금과 노조의 춘하추동 투쟁 때문에 투자도 고용도 꿈쩍 않는다면 구체적 정책과 몸을 던진 설득으로 이런 문제 푸는 게 가장 급한 개혁일 것이다. 또 민족 대(對) 반민족, 진보 대 보수 같은 구시대적 이분법으로 나라를 종북반미(從北反美)로 뒤흔드는 위험한 기류를 차단하는 게 실용일 것이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두려워하고, 안보의 불확실성은 곧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경제 죽이는 ‘이념적 自害’ 막아야▼
“우리 국민 다 죽이는 한미동맹 필요 없다”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대통령 직속기관이 체제를 엎으러 온 간첩을 민주화인사로 대접하는 판에 정부 믿고 투자하란다고 덜렁 투자할 기업이 몇이나 될까.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는 돈조차 묶어두기 어렵다.
대통령은 체제를 흔들어 경제 죽이는 이념적 자해(自害) 행태가 더 번지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 자잘한 일도 그냥 안 넘기는 대통령이 이런 중대한 문제에 침묵한다면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우려가 높다. 대통령 자신에 대한 나라 안팎의 불신과 불안이 더 큰 악재가 되어….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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