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청탁, 어떻게 진행됐나=대통령사정비서관실은 성균관대 예술학부 정진수(鄭鎭守) 교수를 만나 김씨의 교수 임용 청탁을 한 오지철 당시 문화부 차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초에 심광현(沈光鉉·4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에게서 부탁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곧바로 심 원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김씨와 서씨→심 원장→오 전 차관→정 교수’로 이어지는 청탁 관계가 밝혀졌다고 한다. 김씨는 예술종합학교에 강사로 나가고 있어 심 원장과 잘 아는 사이였고 심 원장은 오 전 차관과 1998년경부터 친분을 맺어오면서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정 장관이 거론된 것은 지난달 17일 오 전 차관의 부탁 전화를 받은 정 교수가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면서부터였다. 정 교수를 만나기 전에 오 전 차관은 심 원장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고 서씨와 김씨는 심 원장을 통해 오 전 차관에게 “정 장관을 거명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다”고 전달했다는 것이다.
오 전 차관은 이 말을 믿고 정 교수에게 “정 장관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 장관의 청탁사항으로 와전됐다는 게 청와대측의 결론이다.
▽남는 의문점=사정비서관실은 “오 전 차관이 심 원장을 통해 김씨측에 ‘정 장관을 거명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 달라’고 요청한 점에 미뤄볼 때 정 장관이 오 전 차관에게 청탁을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 장관 등 관련자들의 전화 17대에 대한 통화내역 조사결과도 정 장관과 서씨 부부간에 직접 통화한 기록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 전 차관이 ‘정 장관 거명 승낙’ 요청을 했는데도 서씨가 정 장관 쪽에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또한 오 전 차관이 정 장관에게 직접 청탁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점과 최초에 심 원장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은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오 전 차관은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씨로부터 교수 임용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심 원장 관련 부분을 숨겼다.
▽정 장관은 전혀 개입 안 했나=사정비서관실은 “오 전 차관이 심 원장을 통해 김씨측에 ‘정 장관을 거명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 달라’고 요청한 것을 미뤄볼 때 정 장관이 오 전 차관에게 청탁을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 교수의 주장대로 ‘서씨→정 장관→오 전 차관’으로 이어지는 청탁관계는 오 전 차관의 진술에 비춰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정 장관 등 관련자에 대한 전화 통화내역 조사 결과 ‘정 장관↔김씨 또는 서씨’, ‘정 장관↔오 전 차관’간의 통화기록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오 전 차관의 ‘정 장관 거명 승낙’ 요청에 대해 서씨가 정 장관 쪽에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그러나 명예와 도덕성이 걸린 사안인데 서씨가 이를 인정했다면 정 장관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정규(朴正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현재로서는 최종적인 발표이지만 새로운 자료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조사하겠다”며 “수사라는 게 객관적인 진실 전부를 파헤칠 수는 없는 것이고 조사 자료에 입각한 법률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민원 늑장처리 조사결과=청와대는 정 교수의 민원이 늑장 처리된 데 대한 원인을 조사한 결과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담당자들의 업무 부주의에 따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민원제안비서관실과 사정비서관실의 업무 부주의 관련자에 대해 인사위원회를 열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3급 이상 공무원 비리는 민정수석실뿐만 아니라 인사수석실에도 동시 통보키로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심광현씨 누구인가▼
서영석 서프라이즈 대표의 부인 A씨에 대한 인사 청탁을 오지철 전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90년대 문화운동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5일 A씨와 관련된 인사 청탁에 심 원장이 개입됐다는 청와대의 조사 결과 발표 뒤 여러 차례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으나 심 원장의 전화는 통화 중이거나 받지 않는 상태였다. 또 그는 이날 아침 경기 고양시 일산의 자택을 나가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심 원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심 원장이 며칠 전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고 대책위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아마도 인사 청탁 건과 관련된 고민 때문에 칩거에 들어갔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심 원장이 이 청탁에 개입된 것은 서씨 부부와 오 전 차관, 양측 모두와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심 원장이 책임을 맡고 있는 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강사로 나가고 있다. 심 원장은 문화부의 ‘문화행정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참여정부 출범 이후 문화부의 각종 정책 개발에 활발하게 참여해 왔다.
심 원장은 영상원장으로 재직하는 한편 스크린쿼터 지키기 등을 주도했지만 영화계에서는 그를 외부 인사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심 원장이 2002년 당시 최민 영상원장의 후임으로 결정되자 일부 영화계 단체는 심 원장을 비영화인이라며 항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심 원장은 1998년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당시 주도적 세력이었던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씨 등 친노그룹과 인연을 맺게 된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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