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날 북-러 외무장관 회담 후 라브로프 장관을 평양외국어대로 안내해 부속 외국어학원(한국의 중고교 과정) 학생들이 만든 러시아어 연극을 보여줬다.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직접 지었다는 동화 ‘호랑이를 이긴 고슴도치’를 각색한 이 연극은 숲 속에서 힘이 제일 세다고 우쭐대는 호랑이(미국)를 고슴도치(북한)가 혼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슴도치가 호랑이의 급소인 코를 찔러 나중에는 호랑이가 밤송이를 보고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혼을 내줬다는 것.
북한은 미국에 대해 ‘벼랑 끝’ 외교 전술을 펴는 이유를 대내적으로 설명할 때 흔히 이 동화를 인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을 고슴도치처럼 요새화해 끝까지 대항하면 ‘굳이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먼저 양보할 것이라는 논리다. 라브로프 장관 일행은 어린 학생들의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과 연기력에 감탄했지만 “네 놈의 혀를 꼬치구이로 만들겠다”는 등 잔혹한 대사에 대해서는 당황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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