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15일 국가안전기획부 이상연 1차장은 KAL 858기 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김현희의 자백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실무수사관이었던 A씨는 최근 본보에 “‘언니 미안해’는 대국민용 카피(Copy·광고선전용어)였다”고 털어놨다.
A씨는 “김현희가 처음 한국말을 쓴 것은 이름을 물어보는 남자 수사관에게 체념한 듯 ‘김…’이라고 자신의 성을 밝힌 것이었다”며 “그는 이어 수사관이 내민 종이에 ‘현희’라는 이름을 한글로 적고 이후 한국말로 대답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언니 미안해’라는 말을 한 것은 나중이었다는 것.
여수사관 B씨는 “김현희는 처음엔 일본어 중국어만을 사용했으나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못 알아듣는 척 연기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양된 동체파편 고물상에 넘겨▼
1990년 3월 5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태국 어선의 그물에 KAL 858기 동체의 파편 60점이 걸렸다. 폭파사고 2년6개월여 만이었다.
그러나 이들 파편은 90년대 중반 국내 고물상에 넘겨져 폐기처분된 것으로 이번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당시 파편들을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담당자는 “감정 후 14일 내에 감정물에 대한 반환 요구가 없으면 규정상 국과수가 이를 임의로 처분하게 돼 있다”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95, 96년경까지 파편들을 보관하다 폐기처분 전 국가안전기획부에 수거를 요청했으나 ‘담당자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폐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금속 쓰레기 대부분은 고물상이 그냥 가져갔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당시 파편에서 압축 파열의 흔적만 발견했을 뿐 폭발물에 의한 열 피해 및 폭발물질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이에 국정원 관계자는 “2년간 파도에 씻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며 “우리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현희 부친 외교관근무 사진 입수▼
김현희의 아버지 김원석(1933년생)이 1962∼66년 쿠바 아바나 소재 북한대사관의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의 모습(점선 안). 김현희의 아버지 사진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 사진은 정보당국이 1994년 입수했으며 김현희는 “평양의 집에도 이 사진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희씨 前안기부직원과 97년 결혼▼
KAL 858기 사건의 재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요즘 김현희씨(42)는 어떻게 지낼까.
국가정보원은 “김씨는 완전한 자연인 신분으로 우리의 관리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고려해 실제론 김씨의 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씨는 1997년 12월 자신을 담당했던 전 국가안전기획부 직원과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았다. 결혼 후엔 반공강연이나 신앙간증을 점차 줄였고 최근엔 평범한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 또 이름도 바꿨다.
남편은 안기부 퇴직 후 98∼99년 지방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는 전언이다. 김씨는 최근 한 TV방송에 주거지가 공개되자 “국정원이 알려줬다”고 반발하며 국정원과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씨를 아는 한 인사는 “몇 년 전 국내의 북한공작원 출신자들이 친목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김씨를 본 적이 있다”며 “최근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