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는 美주도로” vs “독주탈피 협력체제로”

  • 입력 2004년 7월 11일 19시 07분


《미국외교협회(CFR)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최근 발행된 7, 8월호에 ‘차기 공화당 정권의 외교정책’을 실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미리 예측해보는 대선 시리즈로 5, 6월호엔 ‘차기 민주당 정권의 외교정책’을 게재했었다. 공화당편은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처크 헤이글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이, 민주당편은 존 케리 후보의 자문역인 샌디 버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표 집필을 맡았다. ‘포린 어페어스’가 전망한 차기 공화당 또는 민주당 정권의 대외정책 기조와 대(對)한반도 정책을 정리한다.》

▼공화당 처크 헤이글 상원의원▼

“미국이 자유와 번영, 평화의 세계를 만드는 중심이 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척 헤이글 의원은 차기 공화당 정권의 외교정책은 그런 믿음 위에 서 있을 것이라며 7대 원칙과 4대 핵심국가론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9·11테러가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새로 규정하게 만들었음을 상기시킨 뒤 “공화당의 외교정책은 구시대의 현실정치나 ‘힘의 균형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7대 원칙=헤이글 의원이 제시한 7대 원칙은 미국의 지도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협정을 확대하기 위한 지도력을 유지해 나가야 하고, 둘째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지도력 역시 경제 및 외교정책과 분리할 수 없는 원칙이다. 헤이글 의원은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2025년엔 현재의 40%에서 53%까지 높아질 것이라며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의 중동정책이 차기 공화당 정권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이글 의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미국이라 하더라도 21세기의 도전을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장기적인 안보정책은 역시 동맹, 연합국, 그리고 국제기구와 연대해 세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현재의 유엔체제는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동지역의 민주화와 경제개혁이 외교정책의 분명한 원칙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중동국가, 아랍의 동맹국들, 이라크,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안보질서를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야 테러리스트의 ‘숙주 국가’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헤이글 의원은 ‘장미혁명’으로 불리는 그루지야의 정권 교체를 모델로 꼽았다.

▽4대 전략 파트너=헤이글 의원은 7대 원칙을 추진하기 위한 4대 전략 파트너로 유럽연합(EU) 러시아 인도 중국을 제시했다.

EU에 대해서는 25개국으로 확대됐지만 궁극적으로는 터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600억배럴의 원유를 보유한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로, 그리고 전략적 무역 파트너로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갈등 해결을 통해 중앙 및 남부아시아의 안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對)중국 외교의 핵심은 13억 인구의 중국이 ‘정상적인 국가’로 변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 지역 통합과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넓히도록 격려하면서도 인권과 법치를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민주당 샌디 버거 前안보보좌관▼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preemption)’이 아닌 ‘사전방지(prevention)’을 외교정책 기조로 강조하고 있다.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샌디 버거 전 백악관국가 안보보좌관이 제시한 청사진도 이 같은 기조 위에 서있다.

▽‘일방주의’가 아닌 ‘국제주의’=버거 전 보좌관은 기고문을 통해 ‘대항이 아닌 함께(with us not against us)’의 원칙을 역설하고 있다.

케리 후보가 자신이 취임할 경우100일 동안 ‘미국은 국제사회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각국에 보내겠다고 공약한 것도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동맹관계를 저버리는 일방주의적인 외교정책을 통해 미국의 지도력과 위상을 훼손했으며 이제 이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버거 전 보좌관은 특히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에 대해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위협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 무력을 사용한다는 논리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위협이 도래하기 전에 이를 사전 차단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특히 북한의 핵 위기 등 산적한 다른 ‘위협’을 도외시한 것도 중대한 실수라고 비난했다.

케리 후보도 “내가 부시였다면 이라크와 북한, 이란 문제를 동시에 다뤘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의무(new missions)=버거 전 보좌관은 기고문에서 “민주당 대통령은 현실감(sense of realism)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차기 민주당 정권은 부시 행정부처럼 명분만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적 외교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미군이 단순한 ‘화력(firepower)’으로만 인식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화력’을 넘어 현지의 재건과 평화 유지를 돕는 ‘동반자(staying power)’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도 모색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권한을 강화해 모든 정보기관의 기금 운영 권한을 국장에게 100% 위임(현재는 20%만 위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의 느슨한 유엔 체제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전환해 언제 어느 때라도 신속하게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버거 전 보좌관은 주장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북한 핵문제 해법은▼

처크 헤이글 상원의원과 샌디 버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핵문제 해결이 중요한 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접근 방법은 달리했다. 공화당이 간접적이라면, 민주당은 직접적이다.

▽공화당의 북핵 해법=헤이글 의원이 제시한 공화당의 외교정책은 한반도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4대 전략 파트너의 하나인 중국과의 관계를 거론하면서 간접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 구상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중국이 △북핵 중재 역할 △미사일 등의 비확산 노력에 대한 기여 △대만문제 등 세 가지 현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미중 관계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특수 관계를 고려한다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는 것.

이는 한국과 일본 러시아가 함께 참여하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다루겠다는 간접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현재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운영의 묘를 살려나가겠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민주당의 대북 협상 구상=버거 전 보좌관은 이와는 달리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핵 폐기라는 궁극적 해결에 대비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대가를 논의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것. 양자회담 대신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을 선호하는 공화당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6기 이상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테러단체에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은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판매하는 ‘월마트’가 될 수 있다는 것.

현금이 부족한 북한이 알 카에다, 하마스, 체첸 분리주의자 등 급진 테러세력에 핵무기를 공급하고 이들 세력이 워싱턴 런던 모스크바에 핵 테러를 감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핵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 규범의 강화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무책임한 소형 핵무기 개발 계획을 철회하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참여해 비핵국가들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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