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이 패러디 사진은 인터넷명이 ‘첫비’인 작가가 만든 것이다. ‘첫비’는 그동안 인터넷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패러디 작가로 정치무협극화 ‘대선자객’ 시리즈, ‘여의도룡기’ 등을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첫비’는 문제의 패러디 사진을 13일 낮 12시50분에 친여(親與) 인터넷 사이트인 ‘라이브이즈’에 올렸다.
이를 ‘첫비팬’이라는 제3자가 약 두 시간 뒤인 오후 2시43분에 청와대 홈페이지 회원게시판에 퍼 옮겼고, 청와대 게시판 담당자가 오후 5시경 이를 다시 초기화면의 ‘열린마당’에 띄웠다는 게 사건 개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애초 회원게시판에 문제의 사진을 올린 ‘첫비팬’의 신원을 조사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첫비 팬’의 신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사모(박근혜 의원을 사랑하는 모임)측 관계자들이 “‘첫비 팬’은 청와대 내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첫비’는 이 사건이 보도된 직후인 14일 청와대 게시판에 “왜 원제작자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초기화면에 올렸느냐”는 ‘항의 글’을 올렸다가 스스로 삭제하기도 했다. 그는 15일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와 결탁해 일부러 박 전 대표를 모욕하는 패러디를 만들었다는 풍문과 관련해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한나라당을 패러디한 것이지, 결코 여성 정치인을 성희롱하고 비하하려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라이브이즈측도 이날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린 ‘패러디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에서 “청와대 게시판에 오르게 된 경위와 과정은 알 수 없으며 알 필요도 없다”며 이번 사건과 무관함을 밝힌 뒤 “작가의 창작품을 한순간에 음란물로 전락시킨 문화폭력에 분노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본보가 ‘첫비팬’의 IP 주소를 추적한 결과, 그는 ‘하나포스’ 망을 이용해 청와대 게시판에 이 사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로텔레콤측은 “영장 없이 IP 사용자를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16일 김우식(金雨植) 비서실장 주재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는 비서실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키로 했다.
김종민(金鍾民) 대변인은 “징계대상은 관계 비서관과 행정요원 등 2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자체 조사를 한 결과 회원게시판에 문제의 패러디 사진을 올린 네티즌이 청와대 내부자는 분명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朴前대표 연일 불쾌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5일 자신의 패러디 파문에 대해 여전히 불쾌함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MBC TV가 중계한 최고위원 경선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청와대라고 하면 외국에서 볼 때 그 나라 문화를 가늠케 하는 곳”이라며 “다른 데도 아닌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민망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청와대 홈페이지를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해야 할 정도라면 큰 문제”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청와대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니까 나라가 이런 혼란을 겪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외신이 이번 사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데 “나라 체면이 걱정이다”며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이날 “외신들이 박 전 대표에게 직접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을 묻고 있다”며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만약 이런 내용의 패러디가 백악관 홈페이지에 떴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정말 대한민국이 이런 수준이라면 답답하고 암담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14일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사과 전화를 받지 않은데 이어 이날도 청와대측의 거듭된 사과 의사 표명에 대해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대변인은 “이런 상황에서 굳이 청와대측과 대화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朴前대표가 원해야 처벌 가능▼
경찰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성적(性的)으로 패러디한 인터넷 사진의 수사여부를 놓고 난감한 입장에 빠졌다.
한나라당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사과가 없으면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라 경찰은 15일 이 사건에 대한 법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경찰은 일단 네티즌이 박 전 대표를 비방할 목적으로 사진을 제작하거나 유포했을 경우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1조를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네티즌이 인터넷상에서 비방할 목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7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에 따라 패러디 사진을 작성한 인터넷 아이디 ‘첫비’뿐 아니라 이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옮긴 아이디 ‘첫비팬’도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처벌을 하지 못하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경찰 관계자는 “박 전 대표측에서 고소장을 접수하거나 서면으로 처벌을 원한다는 진술을 하지 않을 경우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를 시작하더라도 걸림돌이 많다.
인터넷상 패러디를 이 법으로 처벌한 전례가 많지 않다. 4월 총선 직전 탄핵사태를 패러디한 신모씨(27)도 이 법이 아니라 선거운동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됐다.
또 연예인과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다소 관대하게 처리해온 관례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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