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4대의 호스트 컴퓨터를 연결하면서 시작된 인터넷은 원래 핵 공격 앞에서 국가 안보를 목적으로 고안된 군사정보망이었다. 1993년 고작 130개에 지나지 않던 웹사이트는 7년 뒤에 10억개를 넘어섰다.
인터넷은 네티즌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시민을 탄생시켰고 사이버 공간에는 무한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 ‘저널리즘의 양심’이라고도 불리는 저명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A J 리블링은 일찍이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보장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 경악케한 청와대 홈페이지▼
그러나 인터넷은 현대판 하이드파크의 ‘스피커스 코너’라고 할 만하다. 모든 참가자는 어떤 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공공기관과 신문사, 그리고 가진 자나 갖지 않은 자가 나란히 앉아 자신의 주장과 의견, 아이디어와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때로는 개인도 정부나 언론사 못지않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요 며칠 청와대 홈페이지가 뜨겁다. 상반신을 벗은 여배우 몸에 여성인 야당 전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을 게재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패러디란 무엇인가. 패러디란 널리 알려진 영화나 만화 등을 모방해 특정 인물이나 현상을 비판하고 희화화하며 조롱하는 행위를 뜻한다. 패러디는 그것 자체로서 문제될 것이 없다. 기지가 번뜩이는 풍자나 고발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와 생활의 여유를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청와대 홈페이지에 등장했던 패러디는 정치풍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해괴하고 천박하다. 이 사건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청와대 홈페이지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얼굴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문’에다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를 패러디하여 여배우 전도연이 반라 상태로 누워 있는 모습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뜨도록 만들었으니 국민의 경악과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설령 실무자의 실수라고 치더라도 국가가 성차별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여성부를 정부조직으로 특별히 갖고 있고 국회 내에도 여성특위가 설치된 나라에서 정부가 성희롱을 한 꼴이 됐다. 법무장관조차도 “성적 비하가 담겨 있어 상당히 문제 삼아야 할 사건”이라고 국회 답변에서 밝히지 않았는가.
셋째, 이 패러디는 인터넷이 갖는 선정성과 명예훼손, 저질성과 음해성 등 ‘나쁜’ 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누구를 위한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특히 인터넷의 익명성은 급진적이고 왜곡 날조된 정보의 확산, 음란하고 엽기적인 내용의 유포에 매우 편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넷째, 청와대 홈페이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납세자에게 선정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이런 저질 패러디물을 ‘보지 않을 권리’도 갖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다섯째, 이 패러디를 정치적 음모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야당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선거전의 주자에게 미리 흠집을 내겠다는 음해가 있지 않느냐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국정홍보보다 언론공격 도구로▼
사실 그동안 청와대 홈페이지는 국정을 소상히 알리고 민의를 수렴하는 창구로서보다는 야당과 일부 신문을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돼 왔다. 사회운동가 L A 카우프만은 말했다. “인터넷은 선동자의 꿈이다. 빠르고 값싸고 멀리 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거짓과 진실, 편견과 객관성 그리고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비방과 날조, 허위가 한번 뜨고 나면 아무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 가장 윤리적인 언론이 가장 좋은 언론이듯 가장 윤리적인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가 아닐까.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